창작밭/시 41

철쭉

손성란 바람 흙 햇볕 비를 버무려 분홍이다가 빨갛게 붉어졌다가 이내 하얗게 창백해 진 얼굴을 변덕스런 봄길에 온통 맡겨버린 너 태양처럼 뜨겁거나 웨딩레이스처럼 순결하거나 소녀처럼 연하게 수줍은 너의 모습에 취해 가던 길 멈추고 자주 허리를 굽혀 네 곁에 머물다가 문득 하늘이 하는 일을 생각했지 네 얼굴에 박힌 작은 점 하나도 나는 흉내낼 수 없구나 하는 바람이 내준 길을 따라 태양이 내준 빛을 따라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으로 조용히 와서 뜨겁게 피었다가 불평없이 가버리는 네 곁에서 나는 사람이 하는 일도 생각했어 아주 작은 노력만으로도 향기도 색도 모양도 크기도 크고 화려하고 진하면서 아주 오래오래 기억되며 빛나길 바라던 내 일들이 모래와 검불로만 쌓아도 결코 무너지지 않기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내 향기는..

창작밭/시 2023.08.03

손성란 시인

손성란 시인 권 희 로 목사 ※손은 사람을 대신하여 일컫는 말이더라 손성란 시인 고운 손이더라 선행 선심 선물로 아름다운 일만 하니 예쁜 손이더라 칭찬받는 일만 하니 일손이더라 헛되이 놀지 않고 덕된 일에는 힘써 일하니 빠른 손이더라 범사에 부지런 하니 맛있는 손이더라 음식솜씨 좋으니 깨끗한 손이더라 죄악된 더러운 일엔 손대지 않으니 큰 손이더라 약자에게 힘이 되어주고 문제해결에 힘 있으니 바쁜 손이더라 재능 많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어서 그래서 손성란 시인 아동문학가는 언제나 칭찬받는 사람이더라 어디를 가나 큰 손 귀한 손 대우받더라 ※ 2021년 4월 권희로 시인(88세 원로목사님)께서 내 이름으로 시를 지어 보내주셨다. 시부의 간병과 나의 잦은 질병으로 문학활동을 거의 못하고 대면장소에도 나가지 못하..

창작밭/시 2021.09.30

차마 혼자서도

차마 혼자서도 손성란 기막힌 일은 조금 늦었다는 것 때문에 모든 정의가 사라지고 뿌리에 뿌리까지 의심받는다는 것.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기적의 순간을 소원하기엔 내 삶이 그렇게 따사롭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렇다고, 따사롭지 않았다고 차가운 방에 들어앉아 커튼까지 내려둘 일은 아니었다고 중얼거려본다. 차마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도 입 안 가득 물고만 있어야 하는 한 마디 절규가, 목이 뻐근하도록 애를 써도 삼켜지지 않는 그리움 한 덩이가 이제 와 왜 내 몫이 되었는지 신을 모독했던 모자란 과거를 불쑥 꺼내어 참회의 기도를 하게 하는 지 가슴 치며 통곡을 해도 악착스레 붙어있다. 차마 아무도 없는 꿈속에서 조차 뱉어내지 못했던 낯선 뜨거움이 서러움이 되어 목젖을 태워도 냉수 한 모금 마..

창작밭/시 2018.06.10

송시5 김국진님2014 당신의 향기를 고백합니다.

당신의 향기를 고백합니다. 손성란 누군가를 지켜내는 방패가 아닌빛나는 동상으로 앞줄에 세워 달라고단 며칠 창백한 손바닥을 내밀어차가운 악수를 나누는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아이들의 방패로 아이들의 울타리로제일 먼저 아이마중을 나오는 사람그런 사람이 당신입니다. 하루의 시작이 즐겁고 기뻐야학교생활이 즐겁다고천 날을 하루같이교문 앞에 선 붙박이 장승이 되어태양처럼 넓고 환한 손바닥을 펴고촛불같이 위태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그런 사람이 당신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라고어떻게 해야 한다고앞에서 일러주고 가르쳐주기엔수줍은 사람이라그냥 먼저 가서 해 버리곤소리도 없이 빙긋이웃던 그런 사람입니다. 크게 웃지도크게 성내지도 않았지만소리 없는 미소와소리 없는 걱정만으로도그 울림이 우리..

창작밭/시 2014.06.23

송시4 정안식님 2012 먼 후일, 아주 먼 후일에도

먼 후일, 아주 먼 후일에도 손 성 란 희망으로 커야 할 아이들은 희망으로 꿈으로 채워야 할 아이들은 꿈으로 정성으로 보듬어 지극한 손길로 키워낸 희망의 꿈나무들 숲으로 대양으로 세계로 우주로 휘파람을 불며 어깨춤을 추며 거침없이 막힘없이 달려갑니다. 언제부터 이 길을 걸어왔을까? 무엇이 이 길에 머물게 했을까? 해 푸른 젊음에 봉오리 진 꿈을 안고 서툴게 들어선 교단에서 바람 불고 찬 서리 몰아치는 길고 긴 사계의 여정을 수십 바퀴 견뎌낸 인고의 어깨 위에 꿈의 열매들이 황금처럼 빛납니다. 천박하진 않으나 소박한 자리 가파른 절벽도 꽃피는 동산도 아니었지만 걸어온 내내 무릎을 굽혀야 같은 높이의 꿈을 일구고 피울 수 있었던 당신의 묵묵한 선택이 이렇게 향기로운 열매 가득한 나무가 되어 커다랗고 편안한 ..

창작밭/시 2014.06.22

송시1 성필용선생님2000 기쁨으로 보내드립니다

기쁨으로 보내드립니다 손 성 란 스며간 날에 대한 반추(反芻)로 당신 목은 학처럼, 기린처럼 길어만 지는데 영문모르는 성하(盛夏)의 꽃들은 깔깔거리며 흐드러집니다. 그래요. 꽃들의 깔깔거림을 들을 만큼 당신은 미련합니다. 외눈박이 황소 마냥 오직 한 길만을 묵묵히 그것도 마흔 세 해나 걸어왔으니까요. 꿈을 키우는 자가 시인이라면 당신은 릴케였고 마음의 더 깊은 소리를 듣는 자가 음악가라면 당신은 모차르트였지요. 당신 곁에 잠시만 머물러도 릴케의 섬세함과 모차르트의 화려한 영롱함이 뚝뚝 묻어납니다. 숲이 있고, 물이 있고 향기로운 꽃잎 날리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보일까봐, 탐이 날까봐 시인도 음악가도 마다하고 외눈박이 황소가 되었다며 숲처럼, 물처럼, 향기로운 꽃잎처럼 활짝 웃어버리던 바보 같은 당..

창작밭/시 2014.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