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시 41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다 손성란 책상도 있고 의자도 있다. 칠판도 있고 시계도 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도 있고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도 있다. 침대도 있고 화장대도 있다. 식탁도 있고 소파도 있다. 햇볕에 눈 시린 하얀 찻잔도 있고 말라비틀어진 걸레도 있다. 바람이 앉아 책을 읽는다. 시계바늘이 달리기 시합을 한다. 마른 밥풀이 낮잠을 잔다. 화장품 뚜껑은 뽀얗게 분칠을 한다. 문은 기억을 잃는다.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않는다. 두리번거리던 눈동자마저 멈춰 선다.

창작밭/시 2013.06.10

눈 오는 날

눈 오는 날 -다원손성란-옛님의 까만 눈동자 속에 하얗게 내리던 눈발때문에 별을 따다 준다던 그 약속 철석같이 믿었었지. 함께 바라본 밤하늘에선 어느새 수없이 별빛이 쏟아져내리고 쏟아지던 별빛이 내 입술에 닿을 땐 차가운 눈꽃의 짧은 입맞춤에 숨도 못쉬고 하얀 눈꽃을 꼭 붙잡고 있었다니까. 까만 밤하늘의 그림자를 온통 하얗게 덮어버린 별빛 눈이 그칠 줄 모르고 내린다. 잊혀진 옛님의 까만 눈동자 속에 정말 반짝이는 별들이 들어있었을까? 이렇게 쉼없이 숨도 안쉬 고 서둘러 눈은 내리는데 두 눈 가득 들어핀 눈꽃에 눈 먼 내님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으니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이 깊으면 세상의 모든 별빛이 하얀 날개를 달고 그대의 눈동자에서 뛰어나와 나에게로 나에게로만 이렇게 거침없이 날아온다니까 봐, 빛나는 ..

창작밭/시 2010.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