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란
바람 흙 햇볕 비를 버무려
분홍이다가 빨갛게 붉어졌다가
이내 하얗게 창백해 진 얼굴을
변덕스런 봄길에 온통 맡겨버린 너
태양처럼 뜨겁거나
웨딩레이스처럼 순결하거나
소녀처럼 연하게 수줍은
너의 모습에 취해
가던 길 멈추고 자주 허리를 굽혀
네 곁에 머물다가
문득 하늘이 하는 일을 생각했지
네 얼굴에 박힌 작은 점 하나도
나는 흉내낼 수 없구나 하는
바람이 내준 길을 따라
태양이 내준 빛을 따라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으로
조용히 와서 뜨겁게 피었다가
불평없이 가버리는 네 곁에서
나는 사람이 하는 일도
생각했어
아주 작은 노력만으로도
향기도 색도 모양도 크기도
크고 화려하고 진하면서
아주 오래오래 기억되며 빛나길
바라던 내 일들이
모래와 검불로만 쌓아도
결코 무너지지 않기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내 향기는 아주 먼 곳을
떠나니길
기도했던 내 마음이
흉터같은 너의 검은 점들과
꽃잎이 내는 쓴맛까지도
너의 몫으로 받아
한바탕 축제같이 허망했던
벚꽃이 지고 난 자리
불평없이 채워내는
네 앞에서
내가 네가 된 듯
붉은 부끄러움 온몸에 퍼졌다가
하얗게 질렸다가
속절없이 봄바람에 흔들린다.
이제 너처럼
하늘의 마음을 알고 가는
사람의 길을 열어보라고
수줍게 말을 거는
너와 함께
천천히 봄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