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산 문 54

누가 더 행복한가?

처음부터 웃는 사람하고 마지막에 웃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크게 기쁨을 느낄까요? 정답부터 말하면 처음부터 웃는 사람이 더 오래 기쁨을 누립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 동안 기쁨을 누릴 뿐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기준은 아마도 기쁨을 지속적으로 접하는 걸 텐데, 항상 그러기는 어렵습니다. 맨날 좋은 일만 생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럼에도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자기 인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더라고요. 인생이 꿀잼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고난이나 역경도 과장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자기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요소까지 그냥 받아들입니다. 인생의 조각(부분)에 연연하는 게 아니라 큰 그림(전체)을 그리고 거기에서 넉넉함..

창작밭/산 문 2023.10.23

뭐 하러 같이 읽어?

공부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선생님의 설명을 한 번 들으면 대체로 잘 이해하는 편이었고 기억력도 나쁘지 않았기에 전교 1등은 아니어도 학급에선 초중고 내내 상위 그룹에 속해 있었다. 전기도 없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 시골 할머니 댁에서 일곱 살까지 지냈는데 한글을 일찍 익힌 바람에 고모들과 삼촌이 읽던 몇 안 되는 책들을 반복해서 읽었다. 집성촌이었던 시골 할머님 댁 근처엔 아이라곤 나 혼자뿐이었고 대부분 노인들이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일을 나가시면 혼자 집에 있기가 심심하여 같이 따라가 밭둑에 앉아 책을 읽거나 땅바닥에 그림이나 글씨를 쓰면서 놀았다. 게다가 늘 어른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내가 쓰는 단어들은 아이의 언어가 아니라 시골 어르신들의 말을 따라 하는 것이어서 소위 말하는 애늙은이가 바..

창작밭/산 문 2023.09.30

소설가 김훈의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읽고

소설가 김훈의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읽고 8개월간 시아버님의 유언을, 유언 비슷한 말씀을 기다렸는데 그 누구에게도 한 말씀을 남기지 않으셨다. 그저 고생했다 수고했다 건강히 살아라 화목히 지내라 차조심해라 열심히 일해라 좋은 친구를 가져라 아껴써라 밥 잘 먹어라 등등 일상의 덕담들이 무수한데 이런 사소한 당부조차 하지 않으셨다. 의도적이 아닌 일상언어로 긍정적이고 사랑이 담긴 말을 했는데 그게 망자와의 마지막 대화였으면 그것이 사랑이 담긴 긍정적 유언이 되는 것이니 되도록 그런 말들을 언제나 어느 때나 수시로 하는게 맞다 싶다. 언제 소멸할 지 모르는게 생명의 속성이니까.... 시아버님을 하늘로 보내 드린지 며칠이 지나도록 식사를 못할만큼 왜이리 명치 끝이 답답하고 마음이 안풀리나 들여다봤더니 결국..

창작밭/산 문 2023.08.04

2015 종업식날 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2015 학년말 학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의 글.hwp 5학년 5반 학부모님께 개학날을 기다려 겁을 주던 동장군도 입춘에 쫓겨 한풀 꺾였습니다. 감기에게 귀한 시간 뺏기지 않고 모두들 건강하시지요? 우리 5반 어린이들과 만난 지가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다 지나 이렇게 마무리하는 날이 왔습니다. 1년 동안 저를 믿고 소중한 자녀를 맡겨 주시고 뒤에서 끊임없이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일일이 얼굴을 보며 두 손을 마주잡고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나누며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이렇게 짧은 필설(筆舌)이나마 저의 마음을 전합니다. 버스 차장은 일 년만 해도 거스름돈을 한 번에 집어 승객들에게 준다는데 교직은 그 특성상 겉으로는 똑같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전혀..

창작밭/산 문 2016.02.04

2015 어린이 동시집을 묶는 어린이들에게

첫 동시집을 묶는 어린이 시인 여러분, 축하합니다! 아직 쌀쌀한 겨울의 한기가 새 학년 새 교실로 들어서는 여러분들의 어깨를 자꾸만 움츠러들게 했던 3월 첫날의 모습이 영화의 첫 장면처럼 선명합니다. 오직 5학년 5반 이라는 이유만으로 일 년 간 함께 생활해야 하는 운명공동체로 엮어진 역사적인 날이었으니까요. 여러 친구들이 친구들과 선생님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처럼, 올해 처음 연화초등학교로 전근을 온 선생님도 선생님의 선택이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여러분들과 한 묶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생각이었을까요? 어떤 이의 힘이 작용하여 여러분들과 선생님이 만날 수 있도록 한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고요? 사실은 선생님도 여러분들처럼 곰곰이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을 한 단계 더 놓은 세..

창작밭/산 문 2015.12.27

교직에서의 나의 편견

교직에서의 나의 편견 교사가 되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가장 큰 이유로는 교사라는 직업 자체가 아닌 교사들의 모습 때문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촌지와 편애가 특히 나를 괴롭혔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촌지가 성행하던 시기였고 촌지를 하지 못하는 형편을 부끄럽게 여길 만큼 당연한 관행처럼 되어 있었다. 특히 반장이나 부반장을 하게 되면 일 년에 몇 번 쯤은 촌지를 드려야 했고 소풍 때는 선생님의 도시락을 챙기느라 무거운 가방 때문에 소풍이 가기 싫을 정도였다. 선생님들이 한 곳에 모여 계신 곳에 어머니가 준비한 도시락을 내려놓으면 각반 어머니들의 음식솜씨가 자연스럽게 비교되는데 우리 어머니의 음식이 볼품없거나 맛이 없으면 고생한 보람도 없이 담임의 좋지 않은 눈길을 오랫동안 받아야 했다. 어..

창작밭/산 문 2015.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