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향기를 고백합니다.
손성란
누군가를 지켜내는 방패가 아닌
빛나는 동상으로 앞줄에 세워 달라고
단 며칠 창백한 손바닥을 내밀어
차가운 악수를 나누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들의 방패로
아이들의 울타리로
제일 먼저
아이마중을 나오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당신입니다.
하루의 시작이 즐겁고 기뻐야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천 날을 하루같이
교문 앞에 선 붙박이 장승이 되어
태양처럼 넓고 환한 손바닥을 펴고
촛불같이 위태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당신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라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앞에서 일러주고 가르쳐주기엔
수줍은 사람이라
그냥 먼저 가서 해 버리곤
소리도 없이 빙긋이
웃던 그런 사람입니다.
크게 웃지도
크게 성내지도 않았지만
소리 없는 미소와
소리 없는 걱정만으로도
그 울림이 우리들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던 당신을
새삼 기억합니다.
교단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흔들림 없이 문남가족의 그늘막이 되어
꽃 지고 난 뒤
열매를 틀기 위한 거름으로
조용히 삭히어 온 당신의 가슴에서
향기가 배어나옵니다.
천 마디의 말보다
천 번의 손짓보다
훨씬 더 진한
조용하지만 오래 곰삭은 향기가
당신처럼 지금 여기
이렇게 흐르고 퍼지어
남은 이들의 가슴과 마음으로
스며듭니다.
무거운 교육의 안뜰에서 보여주셨던
지혜로운 향기가
이제는
따사로운 가정의 안뜰에서
춤추듯 즐거운 향기로
아름답게 익어갈 것을
믿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14.0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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