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의 아이들 세부의 아이들 다원 손성란 “안녕, 안녕!” 지프리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손 흔들며 뛰어오는 아이들. 가늘고 까만 다리, 커다란 눈망울 수탉이랑 강아지랑 한 몸 되어 신나게 놀다가도 또랑또랑 야문 목소리로 “안녕, 안녕!” 초등학교 교문엔 커다란 페인트 글씨 ‘웃는 얼굴이 행복한 장.. 창작밭/동 시 2010.06.13
부채꽃 부채꽃 다원 손성란 해마다 한번씩 초등학교 운동장에 피는 꽃, 부채꽃. 하얀 깃털 달린 진분홍 꽃 잎. 6학년 언니가 되어야 꼭 한번 피울 수 있지 태평가가 들려야 덩실덩실 피어오르지. 삼복 더위에 땀으로 피운 꽃, 협동과 인내와 소망으로 피운 꽃. 꽃술은 우리들의 6학년 언니, 오빠 선생님의 호각 .. 창작밭/동 시 2010.06.13
친구 친 구 다원 손 성 란 친구 집에 놀러가서 다퉜습니다. 화를 내며 뿌리치고 돌아오는 길 터벅터벅 내 발걸음 무겁습니다. 아까는 보기도 싫던 친구가 지금은 자꾸만 생각납니다. 조금만 참았으면 지금 이 길이 이렇게 멀고 지루하진 않았을 텐데. 창작밭/동 시 2010.06.12
예쁜 내 강아지 예쁜 내 강아지 다원 손 성 란 거뭇거뭇 검버섯 쪼글쪼글 주름고랑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예쁜 데 하나 없는 빈 젖 할미 품에 온몸으로 안겨 비비고 입 맞추고 꾸물꾸물 지렁이 지나간 손등 자꾸 씻어도 온몸에 배어 있는 세월의 냄새 명절에나 얼굴 보는 아들도 딸도 저만큼 떨어져 큰절 하더니 무에 그.. 창작밭/동 시 2010.06.12
민들레 민 들 레 다원 손 성 란 열매도 없이 향기와 가시만 있다고 슬피 울다 시들은 장미야. 기대지 않고는 혼자 설 수 없다고 투덜대다가 보랏빛 멍이 든 포도나무야. 꽃도 열매도 향기도 없이 키만 커서 풀들만 괴롭힌다고 전전긍긍하는 전나무야. .. 창작밭/동 시 2010.06.12
넌 바보다 넌 바보다 -밝은꽃- 넌 바보다 내 심장에서 너의 심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붉은 펌프의 서툰 몸짓에 경련이 일도록 입술을 깨물어도 발끝까지 화닥이는 어리석은 가슴을 헤풀어진 그대로 다 꺼내놓고 까맣게 타오르는 걸 보고만 있는 바보를 보면서도 네가 보고 있는 바보가 바보인 줄도 모르는 넌 정.. 창작밭/시 2010.06.05
외롭다는 건 외롭다는 건 -밝은 꽃- 모든 것이 그대로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하다. 나를 싸고 있는 어제와 똑같은 숨결 정확한 리듬의 심장박동 하늘, 거리, 강아지 수많은 사람들. 나에게도 있었던 그 무엇을 오직 나만 분실한 듯한 허정거림과 불안으로 걸음이 꼬이도록 외롭다는 건 숨 쉬는데 필요했던 .. 창작밭/시 2010.06.04
여름앓이 여름앓이 손성란 소리 없이 밀고 들어오는 대륙의 바람에 주눅 들어 오랜 인고의 시간을 참아 겨우 피워낸 수줍은 꽃 속을 마저 다 열어 보이지도 못했는데 자리를 내달라고 한 번 쯤 작은 눈짓이라도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이렇게 거친 흔적을 남기고 맨발로 황망히 쫓기어 준비 없는 미련.. 창작밭/시 2010.05.24
첫 교단에서 첫 교단에서 손성란 너희 아홉 나기 꼬맹이들아. 어린 선생님은 선생님의 선생님께 약처럼 고된 말씀을 얻어 마시고 울퉁불퉁 서럽게 식도를 넘어 늘어진 위 주머니 받쳐 안으며 천국에 들 듯 조심조심 교실에 서면, 바스락 일어 깨는 눈망울 소리에 소화 못한 말씀들이 곧추 서 버려 붉.. 창작밭/시 2010.05.24
세상을 움직이는 큰 빛 -경인교대60주념 기념 축시 - (경인교대60주년 기념 축시) 세상을 움직이는 큰 빛 21회 손 성 란 삼팔선 가까운 개성에 첫 문을 열어 문맹(文盲)의 어둠을 밝히는 개나리 꽃불로 서해 줄기 따라서 타오르다가, 미추홀 언덕에 푸른 솔로 앉아서 대양의 바람을 온몸으로 막으며, 견디며, 비비며 옹이마다 풀지 못한 역사의 매듭을 걸어.. 창작밭/시 2010.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