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 319

철쭉

손성란 바람 흙 햇볕 비를 버무려 분홍이다가 빨갛게 붉어졌다가 이내 하얗게 창백해 진 얼굴을 변덕스런 봄길에 온통 맡겨버린 너 태양처럼 뜨겁거나 웨딩레이스처럼 순결하거나 소녀처럼 연하게 수줍은 너의 모습에 취해 가던 길 멈추고 자주 허리를 굽혀 네 곁에 머물다가 문득 하늘이 하는 일을 생각했지 네 얼굴에 박힌 작은 점 하나도 나는 흉내낼 수 없구나 하는 바람이 내준 길을 따라 태양이 내준 빛을 따라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으로 조용히 와서 뜨겁게 피었다가 불평없이 가버리는 네 곁에서 나는 사람이 하는 일도 생각했어 아주 작은 노력만으로도 향기도 색도 모양도 크기도 크고 화려하고 진하면서 아주 오래오래 기억되며 빛나길 바라던 내 일들이 모래와 검불로만 쌓아도 결코 무너지지 않기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내 향기는..

창작밭/시 2023.08.03

햇살 먹이

햇살 먹이 손성란 할머니가 아기를 유모차에 싣고 걸어갑니다. 겨울을 품어낸 봄 새싹처럼 할머니의 세월은 연두 빛 햇살로 가만가만 조심스레 아기에게 스며듭니다. 겨울과 봄이 만나 인사를 하는 사이 햇살 먹은 아기는 쑥쑥 자랍니다. 어느새 아기의 유모차는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쥐고 돌돌돌 노래하며 걸어갑니다. 2022년 학산문학 봄호에 출품

창작밭/동 시 2022.04.09

꽃들은 올해도

꽃들은 올해도 손성란 꽃들은 올해도 마스크를 하지 않았어요 꽃들은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또 올해도 역시나 마스크를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마스크를 눈밑까지 올리든 말든 꽃들은 목젖까지 덜컥 열어 놓고 온 얼굴을 내어 놓았어요 햇볕에 익어 온몸이 붉어져도 벌 나비 올 때까지 바람에 춤까지 추네요 작고 여리고 얇고 약하지만 피어있는 날들만큼은 아무 것으로도 가리지 않고 다 보여주고 싶은가 봐요 나도 꽃들처럼 사는 동안 가림없이 거짓없이 용감해지고 싶어요 2022.4.9.토. 붉은 산당화를 보고 (작년보다 2주정도 늦게 핌)

창작밭/동 시 2022.04.09

허브의 꽃말

♧ 나스타치움(Nasturtium): 애국심(Patriotism) ♧ 바질(basil): 미움(Hatred) ♧ 보리지(Borage): 둔감(Bluntness) ♧ 캐모마일(Chamomile) : 역경을 이기는 힘(Energy inadversity) ♧ 챠빌(Chervil): 성실(Sincerity) ♧ 코리안더(Coriannder): 드러나지 않은 가치(Hidden worth) ♧ 크레스(Cress): 안정력(Stability Power) ♧ 엘더(Elder): 열중(Zealousness) ♧ 펜넬(Fennel): 모든 칭찬에 상당함(Worthy all praise) ♧ 히솝(Hyssop): 섬세한 아름다움(Delicate beauty) ♧ 호프(Hop): Injustice(불공평) ♧ 아이리스(Iri..

창작밭/공개글 2021.10.20

손성란 시인

손성란 시인 권 희 로 목사 ※손은 사람을 대신하여 일컫는 말이더라 손성란 시인 고운 손이더라 선행 선심 선물로 아름다운 일만 하니 예쁜 손이더라 칭찬받는 일만 하니 일손이더라 헛되이 놀지 않고 덕된 일에는 힘써 일하니 빠른 손이더라 범사에 부지런 하니 맛있는 손이더라 음식솜씨 좋으니 깨끗한 손이더라 죄악된 더러운 일엔 손대지 않으니 큰 손이더라 약자에게 힘이 되어주고 문제해결에 힘 있으니 바쁜 손이더라 재능 많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어서 그래서 손성란 시인 아동문학가는 언제나 칭찬받는 사람이더라 어디를 가나 큰 손 귀한 손 대우받더라 ※ 2021년 4월 권희로 시인(88세 원로목사님)께서 내 이름으로 시를 지어 보내주셨다. 시부의 간병과 나의 잦은 질병으로 문학활동을 거의 못하고 대면장소에도 나가지 못하..

창작밭/시 2021.09.30

코로나 장마

코로나 장마 손성란 우산도 우비도 없이 나선 길에 우르르 쾅쾅 번개 치며 갑자기 쏟아진 코로나 소나기 에볼라, 사스, 메르스 소나기처럼 금방 지나가겠지 기다렸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그리고 다시 가을 일곱 번의 계절이 지나가도 여전히 쏟아지는 길고 긴 코로나 장마 우리들은 코와 입을 가린 채 함께 모여 밥을 먹거나 노래하지 않네.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함께 숨을 내쉬는 게 비밀이 된 세상을 옛날로 되돌리려면 백신 무지개가 떠야 한다네. 치료의 태양이 솟아야 한다네. 목젖을 드러내고 깔깔 웃으며 수백 개의 눈, 코, 입을 바라보며 노래하고 춤추던 그날 바로 그날로 돌아가고 싶네. 숨차게 뛰어서 아주 빨리 그날로, 바로 그날로 돌아가고 싶네. 2021.9.1.(2020.1.20 이후 코로나 ..

창작밭/동 시 2021.09.30

연수역 벚꽃로(어른을 위한 동시)

연수역 벚꽃로 손성란 긴 강처럼 찻길 따라 한복판에 피어난 사랑의 꽃길 여의도 벚꽃축제 가지 않아도 강원도 깊은 산 찾지 않아도 입던 옷 그대로 집을 나서면 언제나 그곳에서 반겨주는 산책길 폭신한 흙길 시원한 바람 초록나무와 꽃들의 향기 사이에 할아버지, 아빠의 운동기구 할머니, 엄마의 그늘쉼터 나랑 내동생의 작은 놀이터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사람들 숨길 꽃 숨, 이야기 숨, 휴식의 숨 쌓였던 걱정 큰 숨으로 내려놓고 밝고 건강한 숨으로 채워주는 길 나무들이 내준 길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연수동에서 청학동으로 벚꽃로 정기 채우고 연수역에서 서울 한복판으로 달려가는 수인분당선 꽃무릇 붉디붉은 가을 벚꽃로 가쁜 숨 내쉬러 다시 오는 길 2021년 6월 인천문협

창작밭/동 시 2021.09.30

봄바람

봄이 가고 있다. 사흘째 떠나기 싫은 듯 눈물같은 봄비를 뿌리고 있다. 봄비는 봄바람의 춤을 보여주며 봄과의 작별을 예고하나 보다. 이팝꽃이 다 떨어져버렸다 때죽나무 꽃도 바닥에 흥건하다 벚나무 애기 열매들과 초록 꼬투리도 발길에 톡톡 터진다. 빗물에 밥풀처럼 조팝나무 꽃잎이 둥둥 떠다닌다. 오월의 나무는 초록을 감당 못하고 도로 위로 그 빛을 아낌없이 쏟아내며 초록터널 초록의 하늘 울타리로 시원하게 눈과 가슴을 뚫어준다. 이 비가 그치면 이 비에 찔레꽃 하얗게 지고나면 개구장이 변덕스런 봄바람이 마냥 그리운 갑작스런 여름이 올게다. 봄아 봄바람아 봄비야 봄꽃들아 남김없이 고마웠다 빈틈없이 행복했다 시아버님 갑상선초음파검사를 위해 봄비를 맞으며 병원에 다녀왔다. 오월의 나무만큼 건강하시기를... (202..

창작밭/동 시 2021.05.17

쑥개떡 정성떡

시어머님 살아계실 적, 쑥개떡을 만들어 한 장 한 장 비닐에 싼 후 또 지퍼백에 넣어 꽁꽁 얼려두었다가 입이 심심하면 쪄먹으라며 주시곤 했다. 지난 해 주신 것도 남아 있는데 봄이 되면 또 만들어 나눠 주시는게 그리 좋지많은 않았다. 좁은 냉동실 구석에서 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쑥개떡 봉지들은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였기 때문이다. 어느 해던가 몸이 아파 1학기 동안 휴직을 했는데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쑥의 계절 봄을 집에서 빈둥거리게 되면서 유제희 시인의 시골집에 봄나들이 하루여행에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골집 뒷산에 지천으로 돋아난 쑥을 캐서 방아간에서 쌀과 함께 반죽을 해온 후 생애 처음 쑥떡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과정도 번잡하지만 쑥개떡을 동그랗게 빚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개떡..

창작밭/동 시 2021.05.17

지구가 둥근 건

지구가 둥근 건 손성란 지구가 둥근 건 사람들 팔에 안기기 좋으라고 적도의 귀로 쿵쾅쿵쾅 힘찬 아이들 자라는 소리 더 크게 들으라고. 지구가 둥근 건 해님이랑 달님이랑 친구 하라고 해님처럼 따뜻한 맘 달님처럼 다정한 함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그 모습 닮으라고. 지구가 둥근 건 산과 바다가 어깨를 걸고 함께 노래하라고 둥근 해 붙잡고 회전그네 타면서 높은 곳이 낮아지고 낮은 곳이 높아지는 걸 한 눈에 보라고.

창작밭/동 시 2021.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