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란 바람 흙 햇볕 비를 버무려 분홍이다가 빨갛게 붉어졌다가 이내 하얗게 창백해 진 얼굴을 변덕스런 봄길에 온통 맡겨버린 너 태양처럼 뜨겁거나 웨딩레이스처럼 순결하거나 소녀처럼 연하게 수줍은 너의 모습에 취해 가던 길 멈추고 자주 허리를 굽혀 네 곁에 머물다가 문득 하늘이 하는 일을 생각했지 네 얼굴에 박힌 작은 점 하나도 나는 흉내낼 수 없구나 하는 바람이 내준 길을 따라 태양이 내준 빛을 따라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으로 조용히 와서 뜨겁게 피었다가 불평없이 가버리는 네 곁에서 나는 사람이 하는 일도 생각했어 아주 작은 노력만으로도 향기도 색도 모양도 크기도 크고 화려하고 진하면서 아주 오래오래 기억되며 빛나길 바라던 내 일들이 모래와 검불로만 쌓아도 결코 무너지지 않기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내 향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