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동 시 171

봄바람

봄이 가고 있다. 사흘째 떠나기 싫은 듯 눈물같은 봄비를 뿌리고 있다. 봄비는 봄바람의 춤을 보여주며 봄과의 작별을 예고하나 보다. 이팝꽃이 다 떨어져버렸다 때죽나무 꽃도 바닥에 흥건하다 벚나무 애기 열매들과 초록 꼬투리도 발길에 톡톡 터진다. 빗물에 밥풀처럼 조팝나무 꽃잎이 둥둥 떠다닌다. 오월의 나무는 초록을 감당 못하고 도로 위로 그 빛을 아낌없이 쏟아내며 초록터널 초록의 하늘 울타리로 시원하게 눈과 가슴을 뚫어준다. 이 비가 그치면 이 비에 찔레꽃 하얗게 지고나면 개구장이 변덕스런 봄바람이 마냥 그리운 갑작스런 여름이 올게다. 봄아 봄바람아 봄비야 봄꽃들아 남김없이 고마웠다 빈틈없이 행복했다 시아버님 갑상선초음파검사를 위해 봄비를 맞으며 병원에 다녀왔다. 오월의 나무만큼 건강하시기를... (202..

창작밭/동 시 2021.05.17

쑥개떡 정성떡

시어머님 살아계실 적, 쑥개떡을 만들어 한 장 한 장 비닐에 싼 후 또 지퍼백에 넣어 꽁꽁 얼려두었다가 입이 심심하면 쪄먹으라며 주시곤 했다. 지난 해 주신 것도 남아 있는데 봄이 되면 또 만들어 나눠 주시는게 그리 좋지많은 않았다. 좁은 냉동실 구석에서 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쑥개떡 봉지들은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였기 때문이다. 어느 해던가 몸이 아파 1학기 동안 휴직을 했는데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쑥의 계절 봄을 집에서 빈둥거리게 되면서 유제희 시인의 시골집에 봄나들이 하루여행에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골집 뒷산에 지천으로 돋아난 쑥을 캐서 방아간에서 쌀과 함께 반죽을 해온 후 생애 처음 쑥떡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과정도 번잡하지만 쑥개떡을 동그랗게 빚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개떡..

창작밭/동 시 2021.05.17

지구가 둥근 건

지구가 둥근 건 손성란 지구가 둥근 건 사람들 팔에 안기기 좋으라고 적도의 귀로 쿵쾅쿵쾅 힘찬 아이들 자라는 소리 더 크게 들으라고. 지구가 둥근 건 해님이랑 달님이랑 친구 하라고 해님처럼 따뜻한 맘 달님처럼 다정한 함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그 모습 닮으라고. 지구가 둥근 건 산과 바다가 어깨를 걸고 함께 노래하라고 둥근 해 붙잡고 회전그네 타면서 높은 곳이 낮아지고 낮은 곳이 높아지는 걸 한 눈에 보라고.

창작밭/동 시 2021.05.07

동강할미꽃

동강할미꽃 손성란 이러지 말아요밟고 꺾고 캐고 나 혼자만 간직하려고먼 곳에서 달려와캐어가 버리고 희소성을 지키려사진 한 번 찍고는밟아 버리는사람들의 욕심 몇 년 전까지 동강 바위에팔백 개도 넘게 살던 할미꽃올해는 백 개도 남지 않았어요 고개 숙여 사람들 기다리던동강할미꽃이제는 화가 나힘없는 고개를 간신히 들고눈물만 뚝뚝 동강할미꽃 눈물로동강 바위에 우물이 생겼어요 2021.4.5. 식목일 뉴스를 듣고

창작밭/동 시 2021.04.05

사월은

사월은 손성란 벚꽃범벅 사월은 사진 찍는 달 일 년 내내 사월처럼 꽃이 피어도 저렇게 열심히 사진 찍을까? 눈으로만 봐서는 마음에 차지 않는지 금방 사라질까 걱정되는지 꽃만 찍다가 꽃 속에 꽃인 양 함께 찍다가 저 혼자 겨울 벗고 한 겹 꽃잎으로 우리에게 온 봄꽃들 옆에서 아직도 추운 마음 녹이는 걸까? 솜털 하나 없는 맨몸으로 알록달록 꿈꾸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꽃씨들 본 척 만 척 지나친 게 미안해서 그럴까?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처럼 이리저리 다정하게 찍고 찍고 또 찍고 벚꽃범벅 사월은 봄바람의 고마움 꽃들의 대견함 언제라도 꺼내 볼 사진 찍는 달

창작밭/동 시 2021.04.04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손성란 엄마 없는 밤 보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 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19 마스크 안하고 손 소독 안하는 친구랑은 말하지도 놀지도 말라는 엄마의 명령 마스크로 입을 막고 투명 칸막이 안에 갇혀 행여 움직이다 어깨라도 부딪힐까 벌벌 떠는 우리 교실의 친구들 다시는 친구와 어깨동무 할 수 없을까봐 코로나19가 무서운 건데 코로나19와 싸우려면 친구들과 힘을 모아야 하는데 어깨동무 하자고 다가오는 친구가 무서우니 엄마, 어쩌면 좋을까요? 저는 코로나19보다 친구 없는 하루하루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요.

창작밭/동 시 2021.04.04

시를 사랑하는 아이들

시를 사랑하는 아이들                                 손성란 시가 뭔지는 잘 몰라도 말로 하는 노래 글로 쓰는 그림인 걸 조금은 눈치챘구나 그렇지? 어떻게 쓸까 어떻게 표현할까 끙끙 고민하며 시 쓰는 너희들의 얼굴이 또 한 편의 예쁜 시란걸 선생님도 눈치챘단다 함께 바라보고 함께 나누었던 그 모든 것들을 오래 오래 기억해줄래? 그 기억이 또 한 편의 시가 될 때 까지. ..

창작밭/동 시 2017.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