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상장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교내 백일장이 열렸는데 주제가 ‘어머니’였다. 학교 전체가 넓은 장소에 모여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실시하지 않고 국어시간에 각 학급별로 실시했기 때문에 별로 대회라는 느낌은 없었다. 게다가 주제가 어머니여서 선뜻 의욕을 갖고 덤비기가 쉽지 않아서 여기저기에서 어머니에 대한 글에서 봤던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머니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들을 나열해서 시를 썼다. 지금도 생각나는 시 구절은 어머니를 사랑의 울타리라고 표현했던 것과 그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내가 건강하게 잘 컸으니 어머니가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분인가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대충 글짓기를 해서 내고는 대회가 있었는지 조차 잊고 지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운동장 조회를 서는데 교내 학생백일장 대상이라면서 나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조회 내용은 듣는 둥 마는 둥 줄만 삐뚤어지지 않으려 신경 쓰며 멍청히 서 있던 나는 내 이름을 듣고도 그게 내 이름일거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 그냥 서 있었고 그런 나를 본 친구들이 얼른 상 받으러 나가라고 떠미는 바람에 꿈인가 생시인가 하면서 상을 받았다. 1800여명이 넘는 전교생 앞에서 구령대에 올라가 교장선생님께서 주시는 상을 어떻게 받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상장을 주시면서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기특하다고 칭찬하셨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나와 같은 효심을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상을 받고 돌아서는 나의 등을 두드리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는데 정신이 없어서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많은 친구들 앞에서 상을 받았지만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상장을 부모님께 보여드리지도 않았다. 보여드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양심상 보여드릴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말이 없던 성격이었고 말을 해도 나의 속을 내보인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상장을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게 보여드린다고 해도 어머니가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또 상장에 내가 쓴 시가 적혀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머니가 내가 쓴 시의 내용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때 생각으로는 내가 그 상장을 보여드리면 내가 어머니에게 갖고 있던 감정을 모두 들켜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며칠을 가방 속에 구겨지지 않도록 상장을 잘 넣고 다니다가 범죄의 흔적을 없애듯 잘게 찢어 집에서도 버리지 못하고 학교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작은 상장 하나에도 크게 기뻐하시고 받아쓰기 시험지 한 장도 와이셔츠 상자에 소중히 보관하고 계시던 어머니에게 정말 큰 불효를 저질렀다는 것은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첫 상장을 받아왔을 때야 비로소 깨달았지만 아직도 이때의 일을 부모님께 말씀 드리지 않았다. 그냥 내 가슴 속에 깊이 묻어둔 비밀이 되고야 만 것이다. 만약 그 때 그 상장의 내용에 ‘위 학생은 어머니를 주제로 한 교내 학생 백일장대회에서…’라는 문구에서 ‘어머니를 주제로 한’이라는 문구가 없었으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머니께 그 상장을 보여드렸을지도 모른다. 상장을 찢기 전 ‘어머니를 주제로 한’이라는 문구가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던 생각이 난다.
돌이켜 생각하면 어머니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수많은 글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나는 무척 불행했다. 다른 엄마들은 사랑이 철철 넘치는데 왜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을까가 늘 의문이었다. 두 살 터울로 두 남동생이 있었던 나는 엄마 혼자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돌이 갓 지날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충청남도 당진에 있는 시골집에서 친할머니와 살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부모님과 동생들이 있는 인천으로 합치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때까지도 늘 손님 같은 기분이었다.
우선 시골과 도시라는 생활환경의 차이 때문에 깔끔했던 엄마의 눈에 나의 생활모습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어서 놀다가 들어오면 아궁이에서 불을 쬐어 주시며 먼지만 툴툴 털고 방에 들어가 이불을 쓰고 누워서 옷도 벗지 않고 잠을 자도 한 번도 야단을 맞아본 적이 없이 그저 귀여운 강아지였던 나에게 엄마는 밖에서 집안으로 들어올 때면 언제나 목욕탕에서 손과 발을 깨끗이 씻은 후에야 방으로 들어가게 했는데 그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잠잘 때는 할머니의 젖을 만지거나 할아버지 팔을 베고 잠들었었는데 부모님 집에서는 남동생 둘과 부모님이 한 방을 쓰고 나는 딸이라고 배려를 해 주신 덕분에 작은 방에서 혼자 잠들어야 했는데 혼자 자본 적이 없어서 무섭고 심심했다. 어쩌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부모님이 주무시는 안방에서 잠든 적이 있어도 자다가 깨어보면 엄마 품에는 언제나 막내 동생이 안겨 있었다. 내가 가장 싫었던 것이 실내화 빨기였는데 아이 셋을 키우며 작은 구멍가게까지 하셨던 엄마는 동생들 실내화는 빨아 주시면서도 내 것은 한 번도 빨아주시질 않았다. 시골 할머니 댁에서는 아직 시집을 안간 고모와 삼촌들이 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주었는데 그렇게 그리워하던 부모님 집에 오니 완전히 찬밥신세였고 맏딸로서의 역할과 책임감만 요구하는 것 같아 마음속엔 늘 원망과 서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때의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냉정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읽는 책속의 어머니는 하나 같이 따뜻하고 사랑이 많고 자식에게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는 희생과 눈물과 정성과 기도의 모습들을 하고 있어서 나의 어머니만 유독 나쁜 사람이었고 하필이면 흔하지 않은 나쁜 어머니의 딸인 나는 너무나 불행하다고 생각되어서 시골집에서 자랄 때와는 달리 얼굴표정도 어둡고 까불거나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는 어른들 보기엔 의젓하고 속 깊은 애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즈음이었다. 그런 나에게 하필이면 어머니라는 주제로 백일장을 하게 되었고 또 그 대회에서 대상을 받게 되었으니 거짓말로 시를 썼다는 죄책감이 아주 오래오래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때의 백일장 사건으로 글을 쓸 때마다 이게 정말 나의 솔직한 감정인가를 습관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에도 진짜 작가는 이런 감정이어서 이렇게 썼을까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어머니가 되고 나서야, 또 친구들이 어머니에 대해 갖고 있는 마음들이 글 속에 나와 있는 것처럼 무조건적인 사랑과 존경의 감정들이 아님을, 나만이 어머니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될 때까지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어머니에게 다른 집 모녀들처럼 스스럼없이 가까이 가지 못했다. 책에서 글로 읽은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와 현실에서 내가 겪고 느꼈던 어머니에 대한 거리를 좁히기까지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 걸렸다. 지금의 나는 어머니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충분히 알고 있고 느끼고 있지만 여전히 어머니에 대한 찬가나 과장된 그리움이 묘사된 글에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절대가치에 관한 글들은 거의 백퍼센트 한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할 때 유난히 정직, 진솔, 등의 표현에 힘을 주고 지도하는 것 같다. 글짓기라는 표현에서 글쓰기로 바뀐 표현이 들어왔을 때 나는 무릎을 치며 공감하였다. 창작이라는 것이 어차피 허구가 들어있는 것인데 글짓기면 어떻고 글쓰기면 어떠냐고 아직도 글쓰기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교사들도 있지만 진실에 기초하지 않은 꾸며 쓰기는 오래 가지 못하고 그 감동의 바닥이 금방 드러나게 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의 형식과 구조에 딱 맞게 또는 독자의 구미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쓰는 것도 좋지만 가장 기본은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쓰는 어린이시나 일기 글, 편지글에서 뭉클한 감동을 느끼는 것 역시 어른들 글에 겹겹이 쳐져있는 거짓과 과장의 방어벽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머님과의 갈등이 심했던 어린 시절, 사는 것이 바빠서 자식들에게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여러 어머니의 모습이 담긴 아주 솔직한 글을 접했더라면 어머니와 내 문제로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갈등으로 허비하고 고통 받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당연히 이러이러 해야 하는데 왜 우리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것인지, 왜 나는 그런 어머니의 딸이었는지 고민하느라 무수한 시간을 어리석게 허비했던 나 같은 자식들을 계속해서 양산해내는 글들이 더 이상 나오질 않기를 바란다. 비단 어머니에 대한 글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통념이나 관습들의 많은 부분이 거짓으로 쓰인 글들로 관념화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 남 앞에 내어놓는 글을 쓸 때 가장 신경 쓰고 주의해야 할 부분이 바로 정직한 자신의 생각, 정직한 자신의 감정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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