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의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읽고
8개월간 시아버님의 유언을, 유언 비슷한 말씀을 기다렸는데 그 누구에게도 한 말씀을 남기지 않으셨다.
그저 고생했다 수고했다 건강히 살아라 화목히 지내라 차조심해라 열심히 일해라 좋은 친구를 가져라 아껴써라 밥 잘 먹어라 등등
일상의 덕담들이 무수한데 이런 사소한 당부조차 하지 않으셨다.
의도적이 아닌 일상언어로 긍정적이고 사랑이 담긴 말을 했는데 그게 망자와의 마지막 대화였으면 그것이 사랑이 담긴 긍정적 유언이 되는 것이니
되도록 그런 말들을 언제나 어느 때나 수시로 하는게 맞다 싶다.
언제 소멸할 지 모르는게 생명의 속성이니까....
시아버님을 하늘로 보내 드린지 며칠이 지나도록 식사를 못할만큼 왜이리 명치 끝이 답답하고 마음이 안풀리나 들여다봤더니 결국
수고했다 애썼다 고맙다 ... 뭐 그런 종류의 말들을 시부로부터 직접 듣고 싶지 않았나 싶다.
병원 의사, 간호사, 복지사, 간병사들이 세상 이런 며느리 없다고 얼마나 힘드냐고 이불 베개 챙겨주며 좀 쉬라고 먼저 쓰러지겠다고 걱정할 때도 먼 눈으로 모른척 하시던 모습이
병원분들이 보기에도 안돼 보였던지 아버님이 자기들에게는 큰며느리 최고라고 여러번 말씀하셨다고 말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의사샘이 아버님께 유도하시고 아버님은 부정하지만 않으신거지요? 물으면 그냥 웃으셨다.
그럼 그렇지...,
나에게뿐 아니고 유언을 들으러
서너번은 아들과 딸 손주들이 모였지만 말없이
딴세계로 향한 먼 눈빛만을 보여주셨다.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쉽게 힘을 내지 못하던
내가 거의 철인의 힘으로 시부모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이게 친정모에게 세뇌된 건지 유전인자인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혼자 그렇게 살았다는게 더 웃기다)
당연히 마땅히 해야하는 걸로 알고 지내온 긴 시댁살이 중 간병 20여년이 다 끝났는데
나는 이제 날개를 달고 오로지 나에게로 집중하며 나다워지면 되는데
나다워질 나가 없는 것 같다.
오로지 며느리라는 조선시대적 기능 하나만이 남아있다가
그 기능이 쓸모없어지자
나 전체의 용도까지 다 사라진 것 처럼 나의 또다른 쓸모가 기억나지 않는다.
남편의 부모를
내 부모보다 더 열심히 챙기고 신경쓰는 동안
남동생부부에게만 책임을 미뤄놓고 잘 하려니 믿고 있던
너무나 긴 세월 동안
내 진짜 부모 역시
시부모보다 어쩌면 더 오래전부터 병약해지고 늙어버리셨다.
어쩌다 한 번 들러 아주 잠깐 삐쭉 내 얼굴을 보여드리면
우리 딸이 최고라고
시어른 모시느라 고생한다고
신경줄을 느슨하게 하고
너무 애달복달 말고
여태 잘 했으니 끝까지 잘 모시라고
우리는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나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어린시절, 성장기, 학창시절, 결혼스토리, 좋아하는 것들, 예전의 꿈, 사업의 흥망 등 대부분의 것들을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지만 정작 내 진짜 부모님들의
어린시절, 학창시절! 하고 싶었던 일들, 젤 좋았던 때, 힘들었던 일, 가고 싶은 곳, 갖고 싶은 것, 나와 동생들을 키울 때 등등의 일들을
거의 알지 못한다. 한번도 부모님께 그러저러한 옛날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결혼전에는 그런게 궁금하지도 않았고 결혼 후엔 도통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시부께서는 호스피스 의사가 가족과 아버님을 함께 앉혀놓고 아주 여러번 정해진 나머지 시간이 많지 않음을 말씀드렸지만
믿지 않으셨던 것 같다.
사실 의사가 얼마남았다고 알려주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 이미 우리에게 정해진 생명의 시계가 모래시계처럼 거꾸로 카운트 되는 것인데 꼭 죽을 시점 바로 직전에 마지막 당부의 말이나 남기고 싶은 말등을 해야하나 싶다.
나 역시 내친구 내자식등 남은 이들에게
기억될 만한 마지막 말을 무엇으로 할 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다만 김훈 소설가의 단상처럼
남은 사람의 가슴을 너무 텅 비지 않게, 남은 기간 삶을 살아가는데 가급적이면 너무 허전하지 않게 따뜻히 채워진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그런 말들을 시도 때도 없이 들려줘야 하지 않나 싶다.
미안하다, 매화나무에 물줘라 보다는
어머니집 아궁이를 연탄보일러로 바꿔드려라와 같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게.....
내삶이 거창하지 않았으므로
내가 사는 동안 사용했던 언어들 역시 평범한 것이었을 것이니
마지막 말 역시 너무 크고 깊은 의미가 있고 패러독스가 있고 지혜와 가르침이 있고 오래 기억될 한 방이 있는 멋진 문장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내가 이승에서 자리했던 작은 공간이 사라지며 그 차지했던 부피가 다른 삶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갖고 가고 싶고 한생애를 함께 교류했던 이들에게 고마움을,
나는 크리스찬이나 혹시 윤회로 또 만났을 때, 어이쿠야 , 이 업보를 어찌할꼬 소름끼쳐 하지 않고
또 만났네 반가운 악수 정도 할 수 있는 인간성을 지키다 간다는 인사 정도.... 역시 마지막 인사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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