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시

삼막사 가는 길

길길어멈 2010. 10. 15. 00:19
          삼막사 가는 길 손성란
            또 건망증이 튀어나와 지갑 지게로 남긴 얇은 연골마저 밥값으로 지불해 버린 걸 잊었다. 두 번째 가족들, 가을을 잡으러 급히 가는 길. 덩달아 따라 나선 삼막사. 초입부터 뒤처져 간간이 들리는 이야기소리 표적 삼아, 내 가슴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지구의 숨소리 노래삼아 뒤뚱거리며 따라간다. 언제부터인가, 어느 바윗길부터인가 앞만 보고 가다보니 사람의 소리 들리지 않는다. 조심스런 새소리마저 달아날까 갓난애 숨결 같이 내 발소리를 죽인다. 허공을 짚고 무게도 형체도 없는 무엇이 되어 자꾸만 올라간다. 주머니 속에 든 사탕 몇 알을 나눌 말하는 짐승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벙어리처럼 입안의 사탕만 굴리며 인적에 패인 숲길을 따라 겁도 없이 그저 위로만 무심히 기어간다. 두 번째 가족이라 믿었던 말하는 짐승들이 지나가 버린 삼막사 안뜰에 들어가 무심코 흘리고 간 이야기라도 주워 외로운 두 귀의 날카로운 촉수를 재우고 삼성산 이마에 들어앉은 삼막사 풍경소리에 취해 치맛자락에 숨은 수줍은 삼성산 발꿈치 훔쳐보고 싶은 도도한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면 표적도 없이 오르는 이 초행길을 접지 못한다. 후후, 그렇지만 여기서 돌아서자 다독인다. 아무리 두 번째 가족이라도 그들의 기다림마저 내 맘대로 전당포에 맡길 순 없다. 헛된 기다림은 늦잠 자는 신(神)의 게으름 부스러기일 뿐 함께 오르진 못해도 함께 내려는 가야한다. 정오를 갓 지난 신혼의 바람에 속없이 가슴을 열어 내장까지 보여 주었건만 중턱에서 되돌아가는 길에 만난 바람은 이혼법정에서 방금 나온 부부처럼 서늘한 냉기로 온몸을 휘감는다. 아니, 날 세운 칼 소리 챙챙 거리며 내놓고 등을 밀어 아래로 떨어뜨린다. 며칠을 굶었는지 알 수 없는 잎들이 앙상한 뼈를 맞대고 통곡한다. 뼈아픈 속울음이다. 이미 둥지로 가버려 새소리마저 사라진 삼막사 등산로를 홀로이 내려온다. 오르지도 못하고 내려오는 산길에 저벅저벅 커다랗게 발소리를 만든다. 저벅저벅 서럽게 발 울음을 낸다. 삐걱삐익삐거걱, 딱! 늙은 소나무의 혈관이 끊어진다. 산 밖에 두고 온 몇 그램의 수액과 소리 없이 밥집 아주머니 주머니 속에서 히죽 거리는 연골 덕분에 내 무릎에서도 장단을 맞춘다. 삐걱삐익삐거걱, 딱! 아픈 것은 아픈 것을 잘도 알아본다. 망설임 없이 의형제를 맺는다. 오래된 고향집 대문소리처럼 비명을 질러대는 양 무릎의 선창에 소나무 줄기도 빈 상수리 꼬투리도 붉은 잎은 단 단풍나무마저도 기다렸다는 듯 소리를 질러댄다. 내 것인데, 내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 숨 주머니는 나의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횡경 막의 위협 때문일까, 가슴에서 울려나오는 지구의 숨소리는 더 이상 노래가 아니다. 포르테, 포르테, 포르테로 발소리와 경쟁을 한다. 두 번째 가족들의 쉼표가 자리를 내주어야 할 때이다. 이제 더 이상의 안단테는 없다. 서둘러야 한다. 서두르자. 낙엽의 칼질도, 늙은 소나무의 혈관 끊어지는 소리도 며칠을 굶어 뼈 부딪치는 소리를 내는 여윈 나무도 밥값으로 날아간 연골 덕분에 나의 관절에서 질러대는 비명도 못 들은 체 해야 하는 시간이다. 어디선가 말하는 짐승들의 합창소리가 새어나온다. 이제 나도 총총한 사람의 발소리를 내도 좋다. 콩 알 만 한 새들의 속삭임을 깨지 않으려 더 이상 허공을 짚지 않아도 된다. 삼성산 이마에 앉은 삼막사 뜰에서 삼성산 치맛자락에 숨은 발뒤꿈치라도 보고 싶어 짧은 가을을 급하게 따라갔던 표준보다 큰 부피와 무게를 가진 무릎소리 나는 중년여인의 도도한 희망이 접히는 소리가 어느 덧 한나절의 어제가 되어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두 번째 가족들 틈으로 뛰어 들어간다. 2010년 11월3일 수요일 서면초 선생님들과 삼막사 등산을 함께 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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