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시

겨울아, 부탁해

길길어멈 2010. 8. 23. 07:02


      겨울아, 부탁해 다원 손성란 똑같은 수분이련만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싫은 사람 손길 같은 땀방울 싫은 사람 눈길처럼 집요한 계절 지하세계에서의 긴 투쟁에 다시는 어둠속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듯 흐린 새벽 가로등 불빛마저 해의 비늘로 알고 지치도록 목 놓아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눈치 없는 매미 녀석들 사랑해보려 무던히도 참아주는 이 계절 그렇게 살찐 어깨를 있는 대로 다 내놓고 그렇게 온 계절 내내 귀지 한 번 파지 않고 부끄럼도 참고, 울컥 솟는 짜증도 참아가며 다독다독 가을바람 기다렸는데 심장 바닥까지 화끈거리는 농익은 종기를 매달고도 가만가만 귀뚜라미 기다렸는데 누가 내 가을바람 밀쳐내고 이런 한기를 밀어 넣은 거지? 이건 반칙이야 긴 소매 옷은 장롱 속에서 아직 단잠에 빠져 있는데 기척도 없이 끼어드는 건 참을성 없이 여름눈물 닦아냈다고 매미들 승리의 함성 자장가 삼아 낮잠 한번 못자고 서성였다고 이러는 건 너무해. 말했잖아, 여름 태양에 묶여 꼼짝도 못했었다고 끈질긴 땀방울들이 온몸을 기어 다니며 밤낮없이 치분대서 미칠 것 같았다고. 조금만 참아주면 안 돼? 내가 참은 것만큼 만 온몸을 훑어 내리던 싫은 사람 손길 같던 땀방울 바람에 태워 날려 보낼 동안 만 자, 봐! 가을이 오려고 기웃거리고 있잖아. 마지막 한 점 비늘까지 다 태우고 가려는 저 태양의 뜨거운 심술 사이로 조심조심 한 걸음씩 오고 있는 거 너도 다 보고 있잖아. 알아, 너 깔끔한 거 미적거리는 태양의 잔열 널 부러진 매미들 겉옷 참기 힘들다는 거, 그래도, 그래도 겨울아, 가을이 오기 전에 앞서 달려오진 마. 즐비한 여름 잔해 한 번에 날려버리고 하얗게 순결한 세상을 만들고픈 너의 마음과 똑같이 가릴 건 가리고, 담백한 눈길로 파랗게 높은 하늘 바라보면서 온 몸에 가득한 습기를 아주 천천히 말릴 수 있는 그런 시간이 가을이란다. 겨울아, 부탁해. 가을이 오기 전에 먼저 오지 말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따라 와 줘. 긴 소매 옷이 단잠에서 깨어 대문 밖으로 뛰어나갈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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