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시
여름앓이 손성란 소리 없이 밀고 들어오는 대륙의 바람에 주눅 들어 오랜 인고의 시간을 참아 겨우 피워낸 수줍은 꽃 속을 마저 다 열어 보이지도 못했는데 자리를 내달라고 한 번 쯤 작은 눈짓이라도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이렇게 거친 흔적을 남기고 맨발로 황망히 쫓기어 준비 없는 미련한 설움 붉은 잎 새에 꿰며 울지도 못하고 달아나진 않았을 텐데 왜 하필 내가, 왜 하필 나 먼저 왜 하필 나만 되뇌어봐야 메아리조차 대답 없는 외로운 외침 목젖이 붓도록 소리를 질러 봐도 손가락이 부러져라 삿대질을 해봐도 가시 돋친 물음만 되삼켜 헛되이 덧나는 상처 알고는 있었던 걸까 내가 뜨거운 가마 속에 거듭 태워질 때마다 단단해지는 불사조 청자가 아니란 걸 무수히 토해내던 뜨거운 정담의 망치질, 오직 한 번의 빗맞음에도 싱거운 농담처럼 산산이 부서져 미련 없이 흩어지는 초벌구이 토분이란 걸 정녕 알고나 있었던 걸까 -20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