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들 레
손 성 란
열매도 없이 향기와 가시만 있다고
슬피 울다 시들은 장미야.
기대지 않고는 혼자 설 수 없다고
투덜대다가 보랏빛 멍이 든 포도나무야.
꽃도 열매도 향기도 없이 키만 커서
풀들만 괴롭힌다고 전전긍긍하는 전나무야.
돌 틈에 초록 꽃 대궁 박고
노랗게 꽃불 밝힌 나를 아니?
딱딱하고 좁은 돌 틈이지만
여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영토야.
지금은 좁고 작고 낮은 몸이지만
향기도 열매도 푸르름도 없지만
백열등처럼 동그란 꽃씨를 날리며
납작 엎드려 지구의 숨소리 듣는
난 그저 민들레야
장미도 포도나무도 전나무도 아니야
돌 틈 따라 세상 끝 어디든
노란 꽃불 밝히는 난 그냥
민-들-레-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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