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시

차마 혼자서도

길길어멈 2018. 6. 10. 18:05
    차마 혼자서도
                      손성란 
     기막힌 일은
    조금 늦었다는 것 때문에
    모든 정의가 사라지고
    뿌리에 뿌리까지
    의심받는다는 것.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기적의 순간을  소원하기엔
   내 삶이 그렇게 따사롭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렇다고,
  따사롭지 않았다고
  차가운 방에 들어앉아
  커튼까지 내려둘 일은
  아니었다고 중얼거려본다.
  차마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도
  입 안 가득 물고만 있어야 하는
  한 마디 절규가,
  목이 뻐근하도록 애를 써도
  삼켜지지 않는 
  그리움 한 덩이가
  이제 와
  왜 내 몫이 되었는지
  신을 모독했던 모자란 과거를 
  불쑥 꺼내어 참회의 기도를 하게 하는 지
  가슴 치며 통곡을 해도
  악착스레 붙어있다.
  차마 아무도 없는 꿈속에서 조차  
  뱉어내지 못했던 낯선 뜨거움이
  서러움이 되어 목젖을 태워도 
  냉수 한 모금 마실 수 없다.
  때로 조금 늦었다는 것은 죄다.
  그리고 조금 더 늦었다는 것은
  죽지도 못할 거대한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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