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산 문

2015 종업식날 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길길어멈 2016. 2. 4. 16:18

 

2015 학년말 학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의 글.hwp

 
 

5학년 5반 학부모님께

 
개학날을 기다려 겁을 주던 동장군도 입춘에 쫓겨 한풀 꺾였습니다. 감기에게 귀한 시간 뺏기지 않고 모두들 건강하시지요?
 
우리 5반 어린이들과 만난 지가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다 지나 이렇게 마무리하는 날이 왔습니다. 1년 동안 저를 믿고 소중한 자녀를 맡겨 주시고 뒤에서 끊임없이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일일이 얼굴을 보며 두 손을 마주잡고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나누며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이렇게 짧은 필설(筆舌)이나마 저의 마음을 전합니다.
버스 차장은 일 년만 해도 거스름돈을 한 번에 집어 승객들에게 준다는데 교직은 그 특성상 겉으로는 똑같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전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숙달된 능력을 발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새로운 과제 앞에 고민하고 부딪치며 시행착오를 하게 됩니다. 교육의 대상이 인간이고 그 목적이 바람직한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담임교사 혼자 아무리 잘해보겠다고 애를 써도 학부모님들의 협조와 조언, 격려가 없으면 ‘지금 여기’라는 중간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5반 어린이들이 각자의 그릇만큼, 자기 양을 채워 몸과 마음이 건강, 건전하게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여 우리 아이들을 밀고 끌며 포기하지 않고 끝없는 관심으로 뒷바라지 해주신 훌륭한 학부모님들이 계셨기 때문임을 알기에 그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 속도만큼씩 함께 성장하시면서 우리 아이들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 우리나라, 아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전체에 따뜻하고 평화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저나 학부모님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자녀의 양육은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고귀한 숙명적 사명이자 의무입니다.
 
아동들과 생활하면서 즐겁고 뭉클하였던 추억이 많습니다.
수업시간에 아동들이 직접 참여하며 자신을 표현했던 시간, 연동이축제와 현장체험학습에서 평소보다 더 들뜨고 환해 보이던 표정들, 동시집이 완성되던 날의 감동, 봉숭아물을 들이던 날, 친구에게 힘을 주는 한마디 공모로 손목 밴드를 받던 날, 다른 친구들을 위해 봉사했던 멋진 행동들..., 이 모든 추억의 주인공인 소중한 우리 5반 보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이젠 서로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 지 느낄 수 있고, 제법 깊은 대화와 농담도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이별을 합니다.
이제 헤어져야만 할 시점인데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아 학급경영을 하며 겪었던 애로사항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하지 못한 점도 있다고 반성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친구관계를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 배려를 가르치고자 했으나 아직은 작은 밀알이 심어졌을 뿐입니다.
6학년 때에는 5학년 때의 경험을 거울삼아 갈등 없이 친구와 깊은 우정을 나누며, 자신의 꿈을 향해 즐겁게 노력하는 ‘밝은꽃샘의 제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제 이름이 밝은 성(晟)에 난초 란(蘭)이라 우리 한글로 바꾸면 밝은 꽃입니다.)
 
그동안 저희 반을 아껴 주시고 사랑해 주신 학부모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혹시 소통의 문제로 저의 교육관이 학부모님과 맞지 않아 서운하셨던 일이 있었다면 너그러운 혜량(惠亮)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전체를 보는 입장과 자녀만을 보는 입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오해가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인데 오해를 풀어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여건과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서로 마음을 다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으셨다면 지면이나마 간곡하게 용서를 구합니다.(저는 송구하게도 감사한 일 들 뿐이었습니다.^^)
선생이라는 직업병 때문에 또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아무쪼록 자녀와 진솔하고 유쾌한 대화를 많이 나누셔서 사춘기 과정을 훌륭하게 잘 보내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녀들에게 제공되는 기쁜 기억과 등을 두들겨줄 때의 느낌이 평생 동안 어려운 문제에 당면했을 때 나도 상대도 모두 좋은 유연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좋은 성격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기쁜 일 많이 만들어 주시고 포옹도 자주 해주세요. 아무리 몸집이 커도 아이는 역시 사랑을 먹고 크는 학부모님들의 작은 복제걸작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으로서, 인생의 선배님으로서, 자녀들에게 깨알 같은 삶의 지혜를 나누어주시면서 조금은 여유를 갖고 한 걸음 물러서서 아이의 속도에 맞게 기다려주시면 저마다의 몫만큼 아름다운 성장을 이룰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고 계절에 상관없이 늘 따뜻한 봄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웃음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평안하십시오.

 

2015년 2월 4일
담임교사 밝은꽃샘 손성란 드림.

2015 학년말 학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의 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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