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시
보덕포 재란이네 다원 손성란 할아버지도 이름이 있고 삼촌도 이름이 있는데 할아버지네 집의 이름은 언제나 재란이네. 내가 태어나던 1963년에는 가수 박재란 이 최고로 인기가 있어서 이다음에 커서 가수 박재란 처럼 유명하고 인기 있는 사람이 되라고 재란 이라 이름 붙여 놓고 목청 좋아지라고 일부러 울렸단다. 인천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한 잠 자고나면 거짓말처럼 도착해 있는 보덕포 선착장엔 재란이 왔구나 하시며 팔던 과자 한 봉 선뜻 뜯어주시던 창고방 아주머니 할머니 갖다드려라 하시며 그물에서 갓 떼어낸 생선을 주시던 당숙이라 부르라던 어부아저씨 이제는 배도 끊기고 개구쟁이 놀이터이던 보덕사 아랜 파란 바다와 굴 따던 갯바위 대신 끝없이 깔려 벌판을 이룬 하얀 조개껍데기와 전설이 되어버린 바다가 메워져 만들어진 새 땅, 새 육지. 할아버지는 하늘로, 삼촌은 당진읍으로 고모는 고모부 따라 서울로 가버려 양파창고가 되어버린 재란이네. 재란네 집 앞에는 수문통을 막아 만든 저수지가 있었는데 재란네 집 건너에는 전쟁을 피해 모여 살던 즌재미가 있었는데 재란네 집에서 오 분만 걸어가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계신 재란네가 그리워 아홉 살 때부터 혼자 타고 다닌 여객선이 머물던 보덕포가 있었는데 이제는 양파창고가 된 재란이네, 빈 집만 덩그마니 남아있단다.
* 즌재미 : 전쟁피난민 이라는 말이 충청도식 사투리로 발음하기 쉽게 줄여서 전쟁민, 전재미, 즌재미로 변한 것 같다.
* 창고방 : 고깃배가 들어오면 생선 등을 부려 저장 하던 커다란 창고 한쪽에 학교 매점처럼 과자나 술 등 몇 가지만을
놓고 팔던 일종의 구멍가게 점방을 일컫는 말로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