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동 시

청량산

길길어멈 2010. 6. 13. 22:26

        청 량 산
        다원 손성란
        산에 오르기도 전에 맑고 깨끗한 바람이 입안으로 싸악 스미는 듯한 산 이름 ‘청량산’ 국제도시의 위상이 빌딩의 높이에 있는지 구름을 찌를 듯 자꾸만 올라오는 회색상자들 사이에서 아기자기한 샛길과 올망졸망한 봉우리만 갖고서도 결코 기죽지 않는 우리들의 숨통 ‘청량산’ 24시간 편의점처럼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푸른 공기로 가슴을 채우고 새 날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에게 몸통이며 얼굴이며 가리지 않고 샅샅이 내어주고 보여주는 바보같이 맘 좋은 ‘청량산’ 사람들 발길에 옷이 벗겨져 허연 속살이 다 드러나도 청솔모와 도토리로 반갑게 맞아주고 내리막길 넘어질까 손잡아 준 줄기 세상에서 묻혀 온 땀에 절여져 반질반질 윤나게 기름이 흘러도 햇빛에 반짝이는 초록 잎으로 하얗게 웃어주는 속 좋은 산 ‘청량산’ 넉넉하고 맘 좋은 너의 품으로 몇 걸음만 가까이 다가가면 이름보다 몇 백배 더 청량한 기운이 저 아래 마을에서 쪼그라든 가슴을 풍선처럼 팽팽하게 펴주는 산 ‘청량산’ 사람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덧나는 상처로 몸살 앓는 너를 위해 맘 놓고 신음하며 앓는 시간 줄래도 하루를 못 견뎌 달려가 안기고 마는 참을성 없는 우리들에게 맨발에 푸른 동맥 다 내어놓고 언제나 반가운 미소를 날리며 푸르고 넓은 손 반갑게 흔들며 쪼르르 청솔모로 마중 나오는 바보 같이 미련한 우리 동네 산 ‘청량산’ 아픈 곳 호호 불어주는 약(藥)산 ‘청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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