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밭(펌)/산 문

자화상 - 서정주-

길길어멈 2010. 4. 11. 23:11

        **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어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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