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본 순간
이승훈
너를 본 순간 물고기가 뛰고 장미가 피고 너를 본 순간 아무 것도보이지 않았다. 너를 본 순간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갑자기 걸레였고 갑자기 하아얀 대낮이었다. 너를 본 순간 나는 술을 마셨고 나는 깊은 밤에 토했다. 뼈저린 외롬 같은 것 너를 본 순간 나를 찾아온 건 하아얀 피쏟아지는 태양 어려운 아름다움 아무도 밟지 않은 고요한 공기 피로의 물거품을 뚫고 솟아오르던 빛으로 가득한 빵 너를 본 순간 나는 거대한 녹색의 방에 뒹굴고 태양의 가시에 찔리고 침묵의 혀에 싸였다. 너를 본 순간 허나 너는 이미 거기 없었다.
--------------------------------------------- 언제나 사랑은 느리게 온다. 몸이 알아챌 무렵, 그 사랑은 이미 거기 없다. 물고기가 뛰고 장미가 피었을 때. 그것이 사랑이 반짝이는 비늘이었음을 알아챌 때는이미 몸은 저만큼 앞질러 가있다. 투명한 의식만 달랑달랑거린다. (記. 이재훈 시인)
시인 이승훈 1942년 춘천 출생한양대국문과, 연세대대학원국문과졸(문학박사)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현 한양대 국문과 교수, 시집 '사물 A' '환상의 다리' '당신의 방' '너라는 환상' '밝은방' '나는 사랑한다' '너라는 햇빛' '인생' 등이 있다. 68세 노장이지만 내친구들보다 훨씬 더 명료한 젊음이 묻어난다. 그를 좋아하게 된 건 단순히 그의 시집 제목 때문이었다. 마치 나를 보고 지은 거 같은 착각!! 수줍고 우울하고 말이없고 가는 체격에 반곱슬이라는 그를 본적은 없다. 어차피 진정한 사랑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거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의 의식 속에 피어나는 온갖 감정의 안개들을 나는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최근 가장 자주 베이는 언어의 칼자루를 쥔 소중한 나의 시인이다.(記,손성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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