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부모는 없다, 부모노릇도 배워야 한다.
밝은 꽃 예향
세상에서 ‘부모 노릇’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성장한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할 때, ‘남편자격고시’나 ‘아내임용고시’를 통과한 후 부부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결혼생활의 결과로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아이가 생기면 바로 부모가 되어 버리기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일 년 내내 정성들여 잘 지어놓은 농사가 가뭄이나 홍수로 인하여 한 순간에 헛수고가 되어 버리는 것처럼, 아무리 정성과 사랑으로 양육하여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자녀교육이기에 ‘자식농사’라는 말로 빗대어 부모 노릇의 어려움을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준비 없이 부모가 되었으니 잘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변명하거나, 그 역할이 너무 어려워 이제 그만 포기하겠다고 중간에 그만 둘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아이가 탄생하는 그 순간부터 부모 자식 간의 길고도 처절한 숙명적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요즘 자주 듣는 말 중에 윈-윈 게임(win-win game)이라는 신조어가 있는데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지는 전쟁의 과정과 결과 속에 모두 이 윈-윈 게임의 법칙이 적용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 어느 한쪽의 희생도 없이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그런 게임 말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부모 노릇은 일방적인 희생이었다. 특히 어머니의 역할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피와 살을 모두 내어주고도 더 줄 것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의 대명사로 어머니라는 단어만 나와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세상도 세월도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현대의 부모 노릇은 언뜻 보면 세상과 세월을 따라 꽤 많은 부분이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에게 허락된 자녀를 잘 양육하여 한 사람의 바람직한 인격체로 인류에게 무엇인가로 기여하면서 가치롭게 살 수 있는 기본 틀을 마련해주려는 눈물겨운 노력과 희생에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부모나 자식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 없이 양쪽이 다 행복한 승리자가 될 수 있는 자녀양육방법이나 부모노릇의 검증된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세대를 초월하여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역할인 부모노릇의 표준을 찾기 위한 연구가 수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여전히 계속 되고 있는 것은 정해진 왕도와 지름길을 찾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겠지만, 아주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환경이나 아이의 개성, 부모의 조건이 모두 다르기에 여기에서 파생되는 다양성이 수없이 많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적어도 이런 것은 안 되는 것들을 거꾸로 가지치기 해 본다면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스위스에는 스위스부모교육연합(SFPE)이라는 모임이 있는데 ‘올바른 부모의 자녀교육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힘으로 길러지는 것’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전통적인 부모의 역할을 무조건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 자녀 교육에 앞서 자기교육을 통해 자녀교육의 역량을 기르는데 초점을 두고 이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세대 간의 가치관과 변화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규범과 가치의 다원화 현상으로 일정한 자녀교육의 노하우가 세습되기가 무척 어려운 시점에서 부모노릇 역시 끊임없는 재교육과 연구 없이는 어려운 시대임을 보여 주는 단 적인 예인데 나 역시 이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특히 지나치게 맹목적인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의의 몇 가닥을 자녀에게서 부모자신에게로 방향을 틀어 “어떻게 하면 나의 자녀를 가장 잘 키울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탐색으로 돌려봄으로써 몇 가지 해법을 찾아보자.
우선, 부모자신의 행복한 모습 자체가 자녀교육의 시작이다. 행복한 부모의 모습은 자녀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는 진취적인 모습으로 자라게 할 것이다.
두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세상에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본능적인 사랑에서 폭을 넓혀 부모의 부속물이나 대리만족물이 아닌 독립된 한 개체로써 그 존엄함을 엄격하게 인정하고 그 의견을 경청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자녀의 편이 되어주는 최후의 한사람이요, 마지막 안식처가 바로 부모임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조심할 점은 분명한 한계를 설정하라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조건 적인 허용과 방만한 수용은 오히려 독이 된다.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한계를 명확하게 그어주고 일관성 있게 대할 때 올바른 사리판단력과 분별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융화할 수 있는 사회적 인간으로 성숙하게 될 것이다.
네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유와 시간의 문제이다. 어떤 일을 맡기고 그 결과를 성급하게 기대하기 보다는 조바심을 감추고 느긋한 여유를 보여주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자체가 성공임을 알게 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간에 생기는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적당한 시간과 간격을 갖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대개 요즘 벌어지는 갈등의 대부분은 투자한 만큼의 비용과 시간의 효과가 단기에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과 조급함 때문에 자녀가 갖고 있는 능력이 제대로 발현되기도 전에 포기하거나 실패의 경험을 주어 자녀의 자아감만 낮추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다.
다섯 번째로 애정표현을 좀 더 자주하라고 말하고 싶다. 초등학교 3,4학년까지는 스킨 쉽을 동반한 애정표현을 잘 하다가도 정작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거나 사춘기에 돌입하면서 애정표현이 어색해지고 학습량의 증가로 학습상황만을 체크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기기 쉽다. 겉으로는 거부하는 몸짓을 보여도 부모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횟수만큼의 스킨 쉽과 사랑의 말은 자녀를 결코 빗나가지 못하게 하는 사랑의 묘약이다.
여섯 번째로 자녀를 믿어 주라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가 믿는 만큼 이루어낸다는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 부모의 가슴 속에 일렁이는 불안과 불신의 작은 씨앗은 반드시 자녀에게 전달되게 되어 있다. 부모조차 믿지 못하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자녀는 많지 않다. 부모의 확신에 찬 믿음이 전달될 때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가 생긴다.
끝으로 부모가 가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자녀에게 주는 것 같은 느낌은 의타심과 부담감을 동시에 줄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 자녀에게 부모님도 부모님만의 세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고, 부모가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항상 새롭게 투자하고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 중 어느 한 쪽의 성장으로 사라지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 중 어느 한 쪽도 잃는 것 없이 자녀의 성장과 더불어 함께 발전하고, 함께 성장하여,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 그 자체가 행복이요, 보람인 양육태도가 바로 요즘과 같은 지식기반사회의 윈-윈 자녀교육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농사를 짓고 있는 부모들이여!
이제는 조금 행복하게, 이제는 조금 자유롭게
배움으로 부모의 자격을 무장하고 부족한 곳을 메워 가면서
욕심 없는 걸음으로, 여유와 사랑으로, 서로서로 기대고 격려하면서
가뭄과 홍수에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부모와 자녀가 모두 승자가 되는
즐거운 농부가 되어 봅시다.
행복한 부모가 되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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