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산 문

[스크랩] 강화도 기행문

길길어멈 2010. 1. 2. 21:23

아, 강화도!


 손성란


오히려 아이들보다 내가 더 기다렸는지 모른다. 때는 6월이고 바람도 신록도 사람들과 교감하기에 가장 순한 시간 인 데다가 숨통이 막힐 때마다 불현듯 달려가 와락 안겨보고 싶은 곳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아침에도, 저녁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새댁의 가르마처럼  단정한 자태로 기다렸다가는 싱싱한 푸르름과  따사로운 온기를 주는가 하면 갈 적마다, 볼 적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 신방 드는 새신랑 마냥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곳, 강화도!


  그 곳을,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우리의 땅, 강화도를 철부지 열 한 살의 제자들과 동행하여 보러간다. 아니 느끼고 배우러 간다. 무엇을 보게 해야 할까, 무엇을 느끼게 해야 할까, 걱정이 앞선다. 내가 강화도를 좋아하는 것은 ‘지붕 없는 박물관’ 이라 할 만큼 강화 땅 전체가 역사의 흔적으로 발 디딜 틈 없는 볼거리 많은 곳이어서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그저 강화 섬의 생긴 땅모양이 좋고 섬 주변의 나무와 갯벌과 숲과 바람과 물이 이루는 풍광이 좋고,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색과 느낌이 다른 삶의 모습들이 있어서 좋은 이유이기에 역사적 흔적과 상처를 더듬어 알리고 새기게 해야 하는 이번 현장학습에 영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저 어딘 가로 떠난다는 사실에 재잘재잘 신이 난 아이들은 떠나기 며칠 전부터 무턱대고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로 가득 차 있다. 현충일을 하루 앞두고 이루어진 이번 강화도 기행에서 호국보훈의 뜻을 함께 새겨보고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 투쟁이었나를 느껴보게 하자는 선생님들의 거창한 의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음모(?)인지를 그간의 교직 경력으로 어렵지 않게 짐작은 했지만 적나라한 강화도의 모습을 모두 알리고 보여주기엔 너무 아픈 장소이기에 가슴은 맷돌을 안은 듯 무겁고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역사의 아픔이나 가치보다는 강화도 자체가 갖고 있는 풍광을 좋아하는 나의 속내를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장소는 더더욱 아니다. 어찌 할꼬 생각하다가 강화도에 가기 전 사전지도를 철저히 하기로 했다.


 어차피 알고 있는 것만큼 보고 오는 것이 여행이라던 누군가의 말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특히 몽고에게 적극 항쟁하지 못하고 10만이 넘는 힘없는 백성들만을 남겨놓고 무신의 최고 권력자인 최우의 지휘 아래 고종임금을 비롯한 귀족들만이 안전지대를 찾아 피난처로 정한 곳이 강화도였고 개경의 궁궐을 본 따 성을 지어 놓고는 거의 40여 년을 버틴 곳이 바로 고려궁지이다. 「고려」하면 먼저 고려청자와 금속활자, 화려한 귀족문화가 자동으로 떠오르도록 교육된 초등학교의 역사 수준을 감안하며  부패하고 약하기만 했던 고려의 뒷모습을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또한 강화도 전체에 약 50 여 개가 넘는다는 돈대와 포대와 진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열강들의 욕심에 의해 짓밟혀야 했던 우리 백성들의 상처와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와 병인양요, 신미양요, 강화도 조약을 연결하여 약소민족이 자기나라를 지키기 위해 치러야 했던 희생과 서러움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도 했다. 어린 마음에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잃을까 염려되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갯벌의 혜택과 아름다움, 이젠 세계적인 행사가 된 강화고인돌 축제의 의미를 강조하고 하늘이 열리는 첫 날, 제사를 올리던 마니산의 참성단, 전통사찰의 건축양식과 아름다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전등사, 인삼, 화문석, 순무 등의 자랑스런 특산물까지 확인하자 마치 강화도를 직접 눈으로 본 듯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걱정 많은 선생의 쓸데없는 기우이기를 바라며 이 정도면 되었겠지, 아이들을 믿어보자는 심정으로 별을 담은 샘물 마냥 또랑또랑 반짝이는 눈망울 일흔 두 개를 훈장처럼 어깨에 매달고 아직 안개가 성성한 강화대교를 지나니 오전 10시쯤이다. 관광버스 기사님이 주시는 마이크를 잡고 강화대교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유유한 물줄기와 육계도가 된 강화도의 북부로 지금 들어가고 있노라 설명을 했지만 강화대교는 징검다리가 아니다. 너무 넓고 길어서 그냥 시내의 도로를 달리는 느낌이 드는 건 나나 아이들이나 같았다.


 드디어 강화 시내의 작고 좁은 길을 지나 언제나처럼 대여섯 대의 버스를 대기에도 위험스런 고려궁지에 도착했다. 궁궐의 문이라기에는, 왕의 정원이라기에는, 왕족들이 머물렀던 곳이라고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는지 우리 조상들이 좋아하던 나무의 종류가 이런 것이었을까를 추측하며 느티나무, 소나무, 잣나무, 감나무, 앵두나무가 심어진 동헌 앞뜰을 거니는 내 앞을 녀석들은 아무렇게나 뛰어다닌다. 에이, 종이 너무 작다. 종치는 막대가 너무 장식이 없어서 시시하다, 텔레비전에서 신방 엿볼 때처럼 손으로 창호지 문살에 구멍을 내볼까 등등의 수런거림이 들린다. 처음 개경을 떠나 온 고종에서부터 환도할 때의 원종에 이르기까지 설명이 쓰여 진 안내문에 매달린 녀석은 한 명도 없다. 아름드리 보호수 앞에 펼쳐진 아직 덜 자란 잔디밭을 여기저기 밟고 다닌다. 다른 학교들과 겹쳐 아이들 보호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강화고인돌 축제가 열렸던 장소로 갔다.


 여러 곳을 들려야 하기에 교과서에 실린 하점면의 고인돌이 아닌 고려궁지와 3분 거리에 있는 고인돌 터로 향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고인돌 축제의 열기가 아직도 생생한  넓은 터 위에 짚으로 지은 표주박 모양의 움집과 넓적한 정방형 모양의 고인돌 지키미 돌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다른 나라의 돌로 만든 무덤의 모양이 두 개 전시되어 있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특히 북방식 지석묘인 고인돌의 규모가 생각했던 것 보다 매우 커서 놀랐고 운모와 수정인 듯한 반짝이는 광석이 섞인 손바닥 만 한  화강암 돌멩이를 한 트럭 분 정도 늘어놓아 직접 고인돌과 움집의 형태를 만들어 볼 수 있게 해 놓은 것이 아이들을 몹시 흥분시켰다. 심지어 우리 반 아이들은 그 돌을 한 개씩 몰래 집어 와서는 무슨 보석이나 한 점 훔친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했다. 보석이 들어있어서 엄마를 갖다 드린단다. 녀석들, 역시 인공의 정교한 장난감보다는 울퉁불퉁한 자연의 한 조각이 우리를 이처럼 즐겁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힘 있는 자의 무덤이었던 고인돌을 직접 만들어 보며, 고인돌이 세워진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암석의 종류인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를 마니산과 같은 먼 곳에서 이동해 올 수 있었던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에 관심을 보였다.


 역시 슬프고 힘없는 과거보다는 지혜롭고 자랑스런 조상들의 모습에 더 흥미를 보인다. 이것은 강화도 역사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프랑스군과 정족산성에서 싸우는 우리 병사의 처절한 모습과 미국군을 맞아 장렬히 전사하는 어재연 장군과 그 병사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핏빛 전시실 앞을 그저 무슨 스타크래프트의 한 레벨을 올리기 위한 전투장면을 연상했는지 별 감흥 없이 쓱쓱 지나치더니 양헌수 장군이 갑옷을 입고 큰칼을 차고 서있는 유리 상자가 나오자 “야, 이순신 장군이다!”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갑옷 입은 장군은 모조리 이순신 장군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웃음이 나면서도 그만큼 이순신 장군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화역사관에서 인형들로 재현되었던 현장 중에 한 곳, 광성보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인천과는 달리 강화도는 봄 내내 비가 한 번도 오지 않았던 것처럼 가물었다. 광성보의 나무들은 뜨거운 유월의 햇볕에 조금씩 오그라들어 있었고 마른 흙가루가 눈에 보일 만큼 풀석 거리며 날아다닌다. 김밥에 섞이는 황토 빛 흙먼지들이 이곳을 떠도는 슬픈 원혼들은 아닐까 하는 헛된 생각을 하며 용두돈대의 긴 길목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강화도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여러 개의 진들 중에 광성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 역시 강화도에 오면 잠깐 이라도 꼭 이곳에 들러 용두돈대를 휘도는 급한 물살을 바라보곤 한다.  광성보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작고 동그란 손돌목돈대는 너무나 처참한 역사의 장소다. 신무기로 무장한 미군들과 맞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웠던 조선 병사들을 생각하면, 연인들의 산책코스 같이 단아하고 아름다운 이 길에, 산처럼 쌓였을 시체더미와 핏빛 시내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미군은 3명, 조선병사는 350명이 전사했다. 말이 되는 싸움인가! 그나마 살아남은 병사들도 물에 뛰어들거나 자결해 버렸다고 한다. 약소국의 설움으로 가슴이 저리면서도 이곳을 지나면  있을 용두돈대 가는 길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은상님의 강화도 역사에 관한 비문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 나를 끄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전엔 적군을 방어하기 위한 가늘고 긴 산성이 지금은 오직 나만을 감싸주는 비밀스런 통로가 되어 아주 각별한 느낌을 준다.


 용두돈대 아래로 빠르고 힘차게 흐르는 물살과 산인지, 강인지, 바다인지 그 어디까지라도, 연결해 줄 것 같은 돈대의 끝자락은 아픈 다리를 끌면서도 언제나 자석처럼 강하게 나를 유인한다. 물을 낀 수전(水戰)에 유난히 약했던 몽고군이나 질기게도 포기하지 않고 침략을 일삼던 악착스런 일본병사나 이젠 모두 저 강물이 흘러가듯 세월 속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은 물을 좋아한다. 우리 반 녀석들도 다리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더니 돈대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물을 보고는 이내 잠잠해져 버렸다. 나무 사이로, 숲 사이로 뛰노는 모습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돌이나 풀처럼 어여쁘게 잘 어울린다. 아이들도 나도 분명 다 자연이다.


 마지막 코스로 전등사다. 어느 공주가 옥 등을 바쳐서 전등사라 했다던가? 전등사 대웅전의 네 귀퉁이 기와를 받쳐 들고 있는 나신의 외설스런 전설에도, 기와마다 소원을 써서 쌓아놓은 풍경에도, 쓰러질 듯 예전 모습을 안고 있느라 힘에 겨운 불전의 모습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녀석들이 소원을 비는 돌탑에 이르자 저마다 작은 돌들을 올려놓고는 “남자끼리만 사는 세상을 만들어 주세요.”,  “저를 천재로 만들어 주세요.”, “다음 시험에 꼭 1등 하게 해 주세요” 등등의 소원을 빌며 잠깐 진지해지더니 전등사 동문 입구에 늘어선 상가에서 발견한 순무와 인삼막걸리를 보고는 나를 반갑게 불러댄다.

 “선생님, 인삼막걸리 한 잔 하세요. 순무로 안주하시고요.”

 하고는 깔깔댄다. 선생님의 목마름을 염려하기보다는 자신들이 강화도의 특산물인 순무와 인삼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픈 귀여운 허풍이 즐겁다.   “인삼 커피에 순무 과자면 몰라도 날 순무에 막걸리는 곤란하지!”

하며, 녀석들 아니면 인삼막걸리 한 사발쯤은 거뜬히 마셨을 내숭에 혼자 웃는다. 난 오늘 선생이다. 그것도 초등학교의 ….


  전등사를 내려오며 길섶에 핀 애기똥풀을 꺾어 녀석들 새끼손톱에 노랑물을 들여 주니 처음엔 설사 똥 같다고 도망가던 남자 녀석들 까지 너도나도 해달라고 야단이다. 공중화장실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귀신흉내를 냈다가 아이들이 내는 비명에 내가 더 놀라는 시늉을 했더니 재미있어 죽겠단다. 그래, 이 녀석들에게 재미있는 것은 아직 역사의 한 장면은 아닌 것 같다. 대자연의 품에서 마음껏 뛰고, 소리 지르고, 변덕스런 자신들의 몸과 마음에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고, 작고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에도 손뼉을 쳐주는 것이 바로 재미인 열한 살, 연두 빛 나이다.


  녀석들의 강화도도 사실 내 맘속의 들키고 싶지 않은 강화도와 다르지 않다. 아니 똑 같다. 그 곳엔 시원한 바람이 있고, 물이 있고, 숲이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고, 들풀이 있고, 흙이 있다. 슬프고 처절했던 조상들의 원혼보다는 당당하고 자랑스런 장군들과 고인돌과 축제와 인삼과 순무가 있는 곳, 좀 심심하고 우울하면 한 걸음에 달려가 가슴을 쭉 내밀고 깊게 호흡하는 곳, 애기똥풀의 노란 수액이 있고, 아기동자와 인삼막걸리와 약초를 말려 파는 가게가 있는 그 곳, 그곳이 바로 강화도 일게다.

 

 그래 , 10 년쯤 더 지나면 내가 억지로 알게 하고 싶었던 그런 것 들쯤은 저절로 알게 되겠지.


 햇 순무처럼 발그스름한 볼의 건강한 아이들이 있는 우리나라는 괜찮다.  아이들의 즐거운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는 우리들의 교실로 다시 돌아가자.


 아직 초지 대교 다리 위에 동그랗게 걸려있는 저녁 해를 그냥 두고, 원래 왔던 그 자리로 돌아가자. 하루 만에 돌아보기엔 너무 벅찬, 하루 만에 돌아오기엔 너무 아쉬운 강화도에서 아이들과 함께 아이 되어 돌아왔으니 됐다.


 강화도의 질긴 바람과 강화도의 빠른 물살과 강화도의 청정한 애국의 기운을 가슴 가득 담아 왔으니,  6.25가 있는 이 서러운 유월 한 달쯤은 지치지 않고 의젓하게 견딜 수 있을 것도 같다.


출처 : 부평서초등학교29회동창회
글쓴이 : 손성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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