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산 문

들꽃 사랑과 진실한 아비같은 제자 사랑 김종덕 선생님

길길어멈 2014. 1. 11. 11:50

들꽃 사랑과 진실한 아비같은 제자 사랑

- 인천연화초등학교 김종덕 선생님 -


“보리밭 사이 길로 걸어가면-”,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 우리 처음 헤어진 곳도 목화밭이라네-” 유행가 속에서만 상상으로 거닐어 보던 보리밭 사이 길이 우리 연화초등학교에는 있다. 연인들이 만나고 헤어진다는 달콤한 목화밭도 우리 연화초등학교에는 있다. 어디 그뿐인가? 어우동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 멋스런 진초록 토란잎 우산밭 옆에는 흥부네 뒷마당에나 열렸을 법한 조롱박들이 그야말로 조롱조롱 재미나게 매달려 있다. 오월 보리가 얼마나 푸르게 쑥쑥 잘 자라는지 감탄하느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기도 전에 보리를 베어 유월의 햇볕에 널었다가는 아이들과 함께 도리깨질을 하시는 작은 거인 김종덕 선생님의 땀과 노력이 선생님들에게는 낭만과 향수를, 아이들에게는 도시 속 농촌의 아름다움과 여유, 자연의 순리와 변화를 해마다 선물하고 있다.

꽁꽁 언 학교 화단의 얼음을 제일 먼저 깨는 것도 그 분이다. 겨우내 들락날락 닭똥을 익히고 작은 우유 곽에 씨앗을 담아 봄을 준비하는 김종덕 선생님은 구월의 다 자란 토란잎에 몸이 가리울 정도로 작고 가냘픈 대한민국의 토종 농부선생님이시다. 빡빡한 학교 일정에 눌려 언제 봄이 오고, 언제 여름이 왔는지 모르고 지나기가 십상인데 연화의 계절은 작은 거인 김종덕 선생님의 부지런한 몸놀림으로 눈감고도 느껴진다. 벼 모종이 자라는 모판이 보였는가 싶으면 전교생에게 목화모종을 나누어 주시는 사월이 열린다. 이 목화모종 키워 목화씨나 목화솜을 거두는 재미는 연화어린이만의 특권이 된 지 오래다. 학교 주변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김종덕 선생님의 포근한 마음결처럼 여기저기서 천연 솜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린이날 쯤이면 보리가 어린이들만큼 햇푸르게 어여쁜데, 새벽같이 오셔서는 보리화분을 두 줄로 만들어 예쁜 샛길을 만들어 놓으신다. 오월의 선물이다. 갈대, 부들, 노랑어리연, 수련, 마름, 워터레터스, 개구리밥 등의 수생식물이 자태를 뽐내면 그 옆엔 쑥부쟁이, 할미꽃, 섬백리향, 다알리아가 꽃과 향기로 겨루기를 시작한다. 여름방학을 알리는 목화의 어린 열매가 달콤한 맛으로 시골 출신 선생님들의 간식이 될 때는 잡초를 뽑아내느라 사슴 같은 눈망울만 빼고는 선생님의 온몸이 까맣게 타버린다.

1994년부터 야생화, 각종 식물농사와 사랑에 빠져 동춘초교와 연수초교, 우리 연화초교에 이르기까지 그의 꽃 사랑은 이어져 왔다. 선생님은 언제부터 꽃을 그렇게 좋아하시게 되었어요? 하고 여쭸더니 세살 때부터 라며 활짝 웃으신다. 맞다. 어리석은 질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꽃 사랑의 피가 흐르지 않고서야 그 많은 양의 노동을 그 작은 몸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무리다. 여름엔 아침 7시면 벌써 화단으로 출근하시고 해가 있는 저녁 8시가 다 되도록 그냥 화단에 계신다. 혹 일찍 퇴근할 일이 있으신 날은 영락없이 다시 재출근(?)하여 그 날의 농사(?)를 마무리 하고야 만다. 이런 그의 댓가 없는 노력과 땀과 수고 덕분에 우리들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모든 식물들을 완벽하게 만날 수 있다. 행여 모르는 꽃이나 풀이 있으면 아이들이 먼저 “ 선생님, 김종덕 선생님께 여쭤보고 올게요!” 하며 김선생님의 교실로 뛰어간다.

이름 없는 작은 풀꽃도 그리 사랑하니 그의 제자사랑은 오죽하랴! 아무리 개구진 행동을 해도 큰소리 한번 지르는 법이 없다. 친아버지도 그처럼 사랑스런 눈길로 아이들을 소중히 대하진 않으리라. 그 바쁜 틈에도 아이들 하나하나의 소리를 놓치는 법이 없다. 학급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곤충을 잡아 사육병에 넣어주고, 종류별로 모종을 나눠주는가 하면 아이들과 함께 꽃이름 외우기, 열매이름 알아맞히기 등을 하여 자연과 생명의 귀함을 자연스레 가르치신다. 심지어 과학의 달인 사월이 되면 이미 중학생이 된 옛 제자들의 고무동력기를 열 개, 스무 개 만들어 주는 일은 보통이고, 자장면을 사주며 밤늦게 혹은 새벽 운동장에서 연습도 함께 해주신다. 힘드신데 그만 하시라하면 나를 믿고 만들어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절 하냐며 빙긋이 웃으신다. 그런 분이시다. 추우나 더우나 학기 중이나 방학이나 소리 없이 학교 화단을 지키며 꽃들과 함께 하는 흙냄새 나는 그분이 있어 연화초등학교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행복하다. 교육받은 전문성도 좋지만 소박한 그의 들꽃사랑과 진실한 아비 같은 제자사랑은 우리가 그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선생 노릇 하는 것조차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한다. 이제 그의 들꽃사랑이 그의 삶에 건강과 행복의 꽃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며 11월의 쌀쌀함에 따뜻한 차 한 잔 같은 그를 이 달의 선생님으로 내 보이고 싶다.

 

                                                         2004년 11월 인천연화초등학교 교사 손성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