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동 시

구월이 오면

길길어멈 2009. 10. 4. 16:01
    구월이 오면 -밝은꽃- 단물 머금고 붉게 타오르는 사루비아 제 빛에 취해 비틀거리는 쑥부쟁이, 산쪽풀 미풍에도 소스라쳐 탁탁 부서지는 봉숭아 아직은 여름이라 우기느라 노랗게 질린 노랑어리연 하-나, 두- 울 박자 세는 소리에 늦더위와 싸우며 땀 흘리는 어린 몸짓 아직도 초등학교엔 운동회 연습이 한창 마이크 소리에 온 동네가 술렁술렁 달큰한 향기는 바람에게 다 주고 나비에게 얻은 생명 한 톨도 흘리지 않으려는 침묵의 기도로 조용한 꽃밭을 지나면 새 교과서가 든 가방을 메고 재잘재잘 학교 가는 아이들. 어깨까지 훤하던 얇고 작은 옷들이 수도사 제복처럼 단정해졌다. 뜨겁던 여름이 가고 구월이 오면 흐드러져 내보이던 화려한 꽃들이 꼭꼭 문을 닫아 둥글게 뭉치고 어른들도 아이들도 겸손해져서 마음의 마당에 어린 열매 펼쳐놓고 거둘 것, 대를 이을 것, 한 번 더 품을 것 따로따로 알뜰히 챙기어 보느라 조금은 바쁘고, 조금은 들뜨는 마음. 말은 줄고, 기도는 길어지는 구월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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