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동 시

알게 되었어요

길길어멈 2010. 8. 21. 11:27
      알게 되었어요

 

다원 손성란 하늘에는 흰 구름, 파란 언덕엔 한가로운 양떼 한 가득 바게트 빵이 든 바구니를 든 긴 머리의 소녀 그림 속에서 보았던 이런 풍경만이 아름다운 건 줄 알았어요. 지루하지도 않은지 늘 그 자리에 밋밋하게 서있는 벚나무 몇 그루 초록색 페인트칠이 살짝 벗겨진 테니스장의 철제 담장 아침 저녁으로 지나는 길에 엄마의 잔소리처럼 기필코 내 눈에 걸리는 오래된 우리 아파트의 낯익은 풍경들 습관처럼 잠 자고 일어난 아침 망친 그림에 이리저리 덧칠해 놓은 검은 크레파스의 심통 난 숨결만이 데굴데굴 제멋대로 굴러다녀요. 학원에서 돌아오다 보았던 어젯밤의 지루한 벚나무 살짝 칠이 벗겨진 초록 테니스 철제담장 곤파스 입김에 날아간 뒤에야 푸른 언덕에 흰 구름 바게트 빵이 든 바구니를 든 긴 머리 소녀가 있는 그림보다 백배는 정겹고 아름다운 그림이 바로 우리 동네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곤파스가 지나간 뒤에야

                                         2010년 9월 2일 새벽 4시부터 6시 사이에 들이닥친 태풍 곤파스...잠결에도 평생 들어왔던 그 어떤 소리보다

                                         위협적이어서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고 흔들리는 베란다 창문을 잡고 두근두근 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어둠속에서 광란의 춤을 추는 곤파스의 노여운 한 판 굿을 보았다. 힘없이 떨어지는 아파트 창문에서 쏟아지는

                                         유리파편들의 비명, 뿌리채 뽑힌 설움을 자동차에 온몸으로 부딪쳐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고야 어디론가

                                         날아가는 나뭇가지들, 덕분에 내 차도 곳곳에 심한 타박상과 열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가 버렸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유리조각들은 마치 취객이 분노에 겨워 깨뜨린 소주병 조각처럼 초록빛 분노로 곤파스

                                         가 가버린 아침나절을 지키며 남아있는 주차장의 차들과 아파트 벽을 할퀴어 쇠스랑이 지나간 논처럼 빗살무늬

                                         상처를 만들고..............잊지말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너희 사람들이 있기 전에 이미 내가 , 바로 내가 있었노

                                         라고...하늘과 바다와 산의 입김이 만들어낸 분노의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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