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산 문

고맙습니다!

길길어멈 2010. 8. 6. 07:37

                               

 

                            존경하는 김은정 선생님께

 

    여름 장마비 못지 않은 굵은 빗방울이 온종일 교실창가에 선 나뭇잎을 흔들어대는 심란한 하루였습니다.  3층에서 1층으로 교실을 옮긴 올해는 자연의 온갖 마술쇼를 오롯이 제가슴에 품어가며 느낍니다.

 

 해마다 새로 돋는 새순이  작년보다 이쁘고,  바람에 날리는 벚꽃의 낙화가 저미도록 안타까운가 하면 느티나무에 돋는 빗방울과 가지의 흔들림까지 예사롭지 않은 것이 저 역시 나이를 먹는가 봅니다.

 

 19년 교직생활 동안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이 다치는 일은 한번도 없었는데 이번 주 월요일, 체육수업을 하다가 얌전한 선비같은 남자아이 하나가 넘어지면서 스탠드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치는 대형사고가 났습니다.

  처음보는 상당한 양의 출혈에 발이 붙어버린 저는 어떻게 응급조치를 해서 병원까지 갔었는지 잘 기억이 안날 정도로 많이 놀라고 당황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뇌나 눈에는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검사결과가 나왔지만 피부 겹겹이 50바늘 이나 봉합을 하였고 그것을 지켜보느라 병원에서 늦은 시간까지 긴장을 한 탓인지 오늘까지 온몸의 근육이 뻣뻣하고 열도 나고 소화도 잘 안되어 날씨만큼이나 몸상태가 흐렸습니다.

 

 그러던 차에 메일함에서 선생님의 메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인천중학교에서 가족신문 부문 대표로 뽑혀 대회에 나갔다가 상을 건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괜히 시간만 투자하셨다고 섭섭해 하시는 내용으로 시작된 편지 속엔 엄마인 저 보다 더 섭섭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듬뿍 묻어 있었습니다.

 보기에 따라선 예의없이 입바른 소리를 해대는 눈치없는 현길이의 언행에 대하여는 의젓한 듯하나 미련할 만큼 순진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녀석의 속내를 정확히 꿰뚫고 계셔서 저를 놀라게 하시더니, 공동생활에 적응해 가는 현길이의 안간힘을 깊은 연민과 사랑으로 지켜보아 주고 계심에  급기야 주루루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기도해 주세요!"

 "선생님, 기도해 주세요!"

 

 저에게도 하지 않았던 현길이의 절규와 같은 부탁의 말이 다름 아닌 선생님께로 향한 것을 적어 주신 행간에서는 현길이와 선생님과의 깊은 믿음과 공감대와  따스한 밀착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마치 점쟁이처럼 현길이의 엄마에게가 아니라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부족한 선생에게 힘과 용기와 위로를 주기 위해 편지를 보낸 것 같았습니다.

  유난히도 힘들었던 오늘 사건으로 불안하고 냉랭해졌던 저의 가슴은 신기하게도 한순간에 따뜻한 불덩어리를 품은 듯 뜨거워지더니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녹아내린 차가운 얼음덩이는 눈물로 저의 온 몸과 마음을 덥혀 주었습니다.

 

 '교직이란게 이런 거구나,  선생님의 작은 관찰 하나, 격려의 말 한마디, 긍정적인 눈빛 하나가 아이들과 학부모의 가슴을 차갑게도 뜨겁게도 할 수 있는 마술같은 힘을 가진 이상한 직업인거구나.......'

 

 어이없게 큰 사고를 당한 우리반 열살짜리 꼬마를 보면서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부모나 선생의 힘만으로는 안되는 것이라는 사실과 부족하지만, 건강하게 성장하며 내 곁에 있어 주는 두 아들 녀석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제 나름대로, 제 힘껏 자라는 아이에게 늘 부모의 욕심에 닿지 않는다고 채근하고 닥달하는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새삼 반성했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선생님의 너그러운 시각과 언제나 긍정적인 눈빛으로 읽어내는 현길이의 모습이 현길이와 저를 얼마나 안정되고 편안하게 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넉넉함을 정말 배우고 싶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제 아이는 물론 우리반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사랑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제게 이렇게 주어진 아이들이 있음에 감사하면서요.

 

 어울리지 않는 봄비도 그렇고 제 마음도 그렇고 하다보니 송구스러울 만큼  어지럽고 긴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보내려고 합니다. 두서없이 정신없는 글이지만 선생님에 대한 저의 마음은 거짓없이 있는 그대로 묻어있음을 느끼실거라는 믿음때문입니다.

 

 오늘은 제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날입니다.

선생님의 메일은 정말 저를 따뜻하게,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준 단비와 같은 글이었습니다.  현길이의 담임선생님이 아닌 저의 선생님께서 주신 글처럼 사랑으로 가득한 가슴을 품고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시구요,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2004년 5월 58일 금요일 저녁

                                                                현길엄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