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들어 몸이 시들면 마음도 함께 시든다.
도대체 왜 내가, 왜 나만 이런 일을 치뤄야 하는 걸까?
그동안 다른 사람들보다 별다르게 받은 혜택없이
그저 내팔 내가 흔들어 죽어라 열심히 살아온 것 밖에는 없는데....
마음이 시든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이다.
남들은 다 저렇게 갓잡은 생선처럼 퍼덕퍼덕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해
미칠듯 퍼덕이는데 왜 나만 숨쉬기 조차 힘에 겨워
햇볕에 눈이 닿는 것조차 시리고 아파서 지레 눈을 감아 버려야 하는건지
세상 모두에게 소외된 듯한 이 느낌은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과는 비교도 안되는 고통스런 고독이다.
홀로 무인도에 내팽겨진듯한
이 원초적 고독은 부모도 남편도 자식도 건드릴 수 없는 견고한
자신만의 성역이다.
그렇다고 내가 열쇠를 쥐고 있지도 않은
오로지 하늘만 쳐다볼 뿐이다.
신을 믿고 안믿고를 떠나 인간이 이렇게 무력해지면
사람을 의지하기란 쉽지 않다.
신이 내게 무엇을 줄지 안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맘놓고 신을 부르며 신에 속고 신에게 구원을 받았다며
내키는 대로 해석이 가능하기에
결코 속을 것이 없는, 그래서 마음놓고 믿는다고 믿을 수 있는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신을 택하는 것이다.
때로 다른 이들의 어려움이 내게 큰 위로와 힘이 될 때가 있다.
이건 남의 불행을 딛고 일어서려는 이기적인 안간힘이 아니라
나만 외로웠던 것이 아니라는 고독에의 작은 탈출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너도 그랬구나
우리가 그랬던거구나
나 말고 때로 나 보다 더 극심한 것 같은 외로움 속에 갇혀있던
누군가를 발견하면
그제서야 참았던 서러운 눈물이 솟구친다.
조건없이 이렇게 서러운 눈물을 솟구치게 만들어주는 이가 바로 친구이다.
내 옷과 친구의 옷섶을 모두 눈물 콧물로 적시고도 돌아와
후회나 걱정이 없는 친구라면 이건 진짜 횡재다.
이런 횡재를 꿈꾸며
그많은 시간을 버려가며 기웃거린다.
혹시 여기에 있으려나
혹시 오늘은 만나려나.....
콧물도 흘리고
때론 오줌도 지리고
선생님께 볼기며 손바닥은 물론
삼척 밖에 안되는 어린아이에게도 자존심이 뺨이 무너져라 손자국을 찍어가며
가르침이란 이름으로 채찍 당하던 장면을 함께 기억하고 있기에
지금은 누추하나
소년소녀의 옷을 입기전 우리 모두 어린이였을 때
이즈러진 팔자걸음 조차 발레소녀의 멋스러움인 것 같은
빛나는 모습도 함께 갔고 있기에
다른 학령기보다
이놈의 초등학교 친구들은 각별하다.
소위
부랄친구다.
화장실 변기에 대고
어디 소변만 보았으랴
소변조차 놀이감이던 시절의 인생최대의 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의
민둥벌거숭이 그 자체가 놀이감이요 놀이터요 관계이던 시절의 동무인것을....
누구는 동창회에
돈자랑을 하거나 돈을 꾸러오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도 한다.
누구는 동창회에
지나간 첫사랑의 흔적을 찾아
잃어버린 설레임을 찾아
무뎌딘 심장의 고동소리를 확인하고자
누구는 예전과는 달라진
자신의 리더쉽을 보여주고자
누구는 넉넉해진 마음결에 삶의 여유의 지평을 넓혀줄
또 하나의 장식을 찾아
누구는
무료해진 삶의 막다른 코너에서
새로운 바람으로 숨을 쉬고
자신만을 위한 호흡을 하기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각자 차마 떠벌려 다 표현못할
반백년 삶의 사연들을 품고
비슷비슷한 표정을 연출하며 찾아든다.
사람이 얼마나 약한 것인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존재인가
바람이 불기도 전에 이미 바람 부는 쪽으로 업드려 버리는
풀포기보다 더 약하고 약한 존재가 아니던가
서로 부러지지 않고 버티어내려면
뿌리끼리 가지끼리 열매끼리
아니 그 무엇끼리라도
붙잡고 의지해야 가능할 때가 있다.
그 어느 한순간
쓰러질 수 밖에 없는 그 단 한순간의 고통에
늠름해지기 위해 우리는 무수한 인내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아닐까...
한 줄 인사로 마치 내장을 다 드러낸 듯
날마다 출석하는 것으로
적당히 인사치레하는 것도
한 두해 지나면 식상한다.
우리 모두에겐 삶의 가장 깊은 곳
그래서 정말 나랑 닮은 곳이 있는지
위로 받고 싶은
못된 관음증이 있는 모양이다.
때로 진솔한 타인의 다가옴을 기대하며
무턱대고 내 가슴을 열었다가
엉뚱한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열지않고 아무일도 당하지 않은 것보단
훨씬 나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상처라는 삶의 쓴약이 경험으로 남으니까...
친구들아,
내가 욕심일까?
이름은 아는데, 나이도 아는데.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별하는데
뭘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먹으며
무엇에 허우적거리며 무엇에 기쁘고 아픈지
궁금해하면 안되는 걸까?
돈이 조금 더 많고
조금 더 배워서 조금 안락한 직업, 조금 대우받는 자리에 있어서
그렇지 못한 사람과 조금은 구별되는 게 마땅한 건가?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 한 줌 흙으로 부패될 시간과 공간도 갖지 못할 우리 현대인들인데...
이제 자연이 산천이
우리의 상한 영혼조차 뜨거운 불길로 단번에 처리하고
흔적없이 빛의 속도로 순환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공중에 흙어진 분진같은 우리네 뼈에 살에 마음에
그 무엇이 메모리 되어 있다고.....
이 공간이 어떻게 쓰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차피 모든 것은 어느 순간에 이르면
제 멋대로 돌아가고 굴러가는 것이니
모험을 하듯 삶의 굴렁쇠를 용감하게 굴려본다.
부메랑처럼 우리네 가슴으로
나의 가슴으로 다시 돌아오는 친구의 아픈 상처, 기쁜 함성
삶의 의욕,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
굴러갈 때는 초라하고 작은 동그라미 였지만
돌아올 때는 가슴이 뻐근할 만큼 커다란 사랑과 희망의 굴렁쇠가 되어
모두의 가슴에 정확히 돌아오는 부메랑이 되기를 기대하며
자 이제 놔 버린다.
나의 오래된 일기장아~~
굴러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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