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스승의 날을 보내며
다원 손성란
선생님 죽이기 프로젝트가 최소한 90%는 성공적으로 달성된 것 같다.
선생님을 죽이고 나면 무엇이 남기에 모두들 그리 혈안이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선생님은 경쟁자가 아니다. 부모가 자기 자녀의 영구 전문교육자라고 한다면 생님은 한시적인 위탁 전문 교육자이다.
자기 자녀만을 본다면 부모보다 더 정확한 진단과 치료법을 알고 있는 교사는 없다.
부모의 편의를 위해 정해진 기간 동안 위탁을 맡은 이는 경쟁자가 아니고 상호 협력해야 할 동반자이다.
선생님들이 먹는 철 밥통 속에 임금님 수랏상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의 밥이 담겨 있어 화가 나는 것일까?
아니면 화수분처럼 철 밥통은 숟가락만 들면 저절로 입맛에 맞는 밥과 반찬이 끊임없이 솟아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참으로 궁금하다. 선생님 죽이기가 끝나면 무엇이 이루어질까. 무엇이 남을까 궁금하다.
선생님은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다. 나의 아들, 딸이고 조카이고 이모나 고모, 아버지, 삼촌, 옆집에 사는 이웃이기도 하다.
가르치는 이에게는 적당한 위엄과 넘볼 수 없는 어떤 힘이 필요하다. 친구같이, 부모같이 다정하고 자애롭기만 해서는 힘들다.
한두 명의 자녀를 키워본 부모라면 모두 다 인정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사랑과 용서, 칭찬과 격려, 최고라는 자신감 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할 수 있도록 언제나 보장된 아이가 자신의 자녀이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그 화를 소모할 곳이 없다. 모든 에너지가 집중된 화를 소모하는 대상이 선생님이 되어버린 듯하다.
스승의 날은 좋을 것도, 싫을 것도, 무슨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 날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저 부끄럽고 서글픈 날이다.
이름만 남은 이 날이 차라리 없다면 이런 기분만은 덜 느낄 수 있지 싶다.
선생님들끼리 모여 앉아서 서로 위로하고 마음을 다독이는 그런 날을 해마다 맞이하고 싶지 않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기분으로 스승의 날은 무엇을 선물하는 날이 아니라고 강조할 필요도 없는 말들을 반복하는
낯부끄러운 코미디도 더 이상은 사양하고 싶다.
한 번쯤 근사하게 폼 잡고 촌지를 거절하며 진짜 선생다운 면모를 보이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어진 지
벌써 십 수 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요 며칠 학교 홈페이지를 열면 제일 먼저 툭 튀어나오는 팝 문구는
"촌지,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맙시다!"
웃어넘기는 것도 우습다.
촌지, 그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정성과 뜻이 담긴 마음의 겸손한 표현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는 촌지가 거대공룡의 몸통처럼 부풀어 입에 올리기만 해도 부정부패한
청렴치 못한 파렴치한이 되어버리는 무시무시하고 더러운 단어가 되어버렸다.
이런 오늘날의 스승과 제자, 학부모와의 관계를 먼저 가르침의 자리에 계셨던 옛 선현들은 알고나 계실까?
그래도 몇몇 친구들이 새벽부터 선생님이 우리나라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우리의 희망이라고
카네이션 그림과 함께 보내온 짧은 격려의 문자에 피식 웃으며 몸과 마음을 다잡는다.
누가 뭐라 해도 이처럼 사랑스런 물건을 만드는 직업이 또 있을까?
재료와 관심과 열정과 끈기가 지나치게 많이 필요한 물건이라 좀 고단하긴 해도
매순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달아주는 요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들 기르는 맛에
또 하나의 긴 주름을 만들어가며 오늘도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댄다.
불 때다 만 부지깽이 들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천방지축 개구쟁이 손자를 따라 다니는 시골할머니처럼……,
더 많이 사랑하는 외사랑의 허전함을 잊을 만큼 뻘뻘 땀을 흘리며 허정거리는 다리로 바람 같은 아이들을 뒤쫓는다.
2012년 5월15일 스승의 날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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