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자신을 믿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손성란
◈ 근무 시간 내에 다른 학교에 가보고 싶어서 ES 나르미에 도전하다.
좀 부끄럽지만 나르미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그저 출장 달고 인천에 있는 초, 중, 고등학교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유혹에 역마살 낀 뭐 마냥 겁도 없이 공모원서를 내버렸다.
나르미에 합격하여 강사의 자격이 주어지면 수업이고 학교업무고 다 제쳐두고 오직 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 주리라는 헛된 꿈도 한몫 했다.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가 수다 떨기인 터라 ‘까짓 전달할 내용만 정확히 주어진다면 좀 많은 사람 앞에서 수다 떠는 기분으로 하면 되지. 뭐’ 하는 터무니없는 용기가 어디서 생겼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아마도 선생노릇 20년에 교직과 관련된 경력이라고는 철없는 아이들과 뒹굴며 뛰어 논 것 밖에는 없고, 웬만한 의사보다 의학상식이 많을 만큼의 화려한 병력-크고 작은 수술12회, 입원, 병가, 휴직, 이로 인한 비담임의 세월 등-만을 쌓아 온 자신이 무척 한심하고 싫증났던 것 같기도 하다. 건강의 상실은 나이 마흔 넷에 연수라고는 일정강습 밖에 받은 것이 없고 연구는 물론 부장 경력, 포상 경력까지 전무한 깔끔한 인사기록카드와 학교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손님 같은 마음을 선물했다.
10년 쯤 선생노릇을 하면 어느 분야에선가 전문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전문가는 커녕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모습을 건강 때문이었다고 변명하기에는 너무 궁색하지 않은가.
◈ 첫모임에서의 좌절감, 잘못 온 것은 아닐까?
가칭 ‘교원내부강사 모집’이라는 공문의 홍보부족과 늘 바쁘기만 한 학교의 관심부족 덕분에 덜컥 서류심사에 합격하여 첫모임에 참석했을 때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각 급 학교의 교장, 교감 선생님들이 8분이나 오셨고 대부분 무슨 무슨 부장의 직함을 달고 오거나, 교육방송 쪽에서 또는 컴퓨터 쪽에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쟁쟁한 실력의 선생님들 틈에 그림자 같이 존재감 없는 내가 낀 것이 확인되는 순간 ‘잘못 왔구나!’싶은 후회가 짙은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내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엎질러진 물인 걸…….
◈ 48시간의 강훈련으로 철갑옷을 입다.
방학 때 집에서 쉬다 보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참 우습게 지나갔던 시간이었다. 겨우 일주일의 교육으로 교육혁신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르게 정립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으로 교육하는 주최 측도 교육받는 나 자신도 믿지 않고 그저 절차상의 한 과정으로 연수를 받기 시작했다.
노대통령도 지적했다시피 혁신의 바람이 가장 늦게 불어온 곳이 학교인지라 교육의 내용은 기업에서 이미 실시하여 효과를 본 혁신의 방법과 성과, 고객만족을 통한 이윤창출을 위한 경제윤리에 입각한 서비스위주의 혁신마인드 함양교육일 수밖에 없었기에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혁신의 흐름과 살아남고자 하는 갖가지의 시도가 새롭기도 하고 감탄스럽기도 하였지만 이런 훈련을 통하여 과연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교육혁신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접근하여 전달해야 하나 까마득하기만 하였다.
그런데 정말 교육의 힘이란 것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가를 절절히 느낄 수 있을 만큼 하루하루 훈련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호감 가는 표정을 만들기 위해 입 꼬리를 올리면, 근육이 경직되어 달달 떨리며 찌그러지던 볼 살들이 자연스럽게 펴지고 상대를 배려하는 눈빛과 화술, 경청의 태도를 익히며 어느 새 꼼꼼하게 바느질된 혁신의 갑옷을 하나씩 갖춰 입는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며 함께 교육받는 스므명의 나르미와 자기 자신에게 신뢰의 신호를 보내게 되었다.
‘그래, 다 자란 선생님들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정보를 얻은 우리가 들은 대로 전달하는 것이 강사의 역할이니 부끄럽고 부족해도 한 번 해 보자.’
◈ ‘ES 나르미’라 이름을 짓다.
혁신이라는 낱말이 주는 강렬함 때문에 오는 거부감을 줄이고 누구보다 현장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같은 교사끼리 혁신정보를 나누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다는 시교육청의 취지아래 전국 최초로 교원내부강사의 교육을 받는 동안 이 혁신강사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무척 고민하였다. 브랜드 이름으로 상품가치가 결정되는 요즘 강의내용과 강사들의 이미지에 딱 맞는 이름을 정하려고 교육기간 내내 생각을 모았다.
그 결과 1년 전 먼저 출범하여 우리 인천은 물론 전국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교육행정공무원을 위한 행정직 내부강사인 ‘CS 나르미’와의 통일성과, 교육만족을 위한 갖가지 방법과 생각을 나르고 운반한다는 뜻의 ‘교육(Educatidn) 만족(Satisfaction) 나르미’로 결정하였다.
이름을 달고 나니 출전을 앞둔 운동선수처럼 두근거리기도 하고 비장한(?) 책임감이 들기도 하는 것이 역시 하나의 이름이 주는 소속감과 유대를 경험하게 하였다.
◈ 첫 강의를 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시작하다.
초등교사로만 근무한 나에게 첫 강의를 고등학교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첫 강의는 최소한 몇 분씩은 낯익은 선생님들이 있는 초등학교부터 시작하고 싶었지만 나의 소망과는 달리 학교의 위치도 막연한, 그것도 남자고등학교로의 첫 출강이 결정되자 며칠 전부터 걱정으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파워포인트 자료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강의내용을 수없이 되뇌어 연습을 한 후, 일터에 나간 남편을 불러 일일 운전기사로 승격(?)시킨 후 63빌딩처럼 높아만 보이는 정보산업고등학교로 입성, ‘연수구의 구성애’가 되어 한 시간당 삼백만 원 쯤 받는 인기강사가 되어 마누라 덕분에 놀고먹게 해달라는 남편의 장난 섞인 응원을 등에 업고 교무실로 찾아갔다.
연수를 신청하신 교무부장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시며 직접 타주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교장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컴퓨터실로 들어섰다. 초등학교와는 달리 창문이 작고 높게 달려 있고 학교이전을 준비하고 있어 여기저기 보수할 곳이 많아 그렇잖아도 긴장한 마음에 형무소에라도 온 듯 겁이 났지만, 교육받은 대로 온화한 미소와 여유 만만한 표정을 만들려 안간힘을 쓰며 불러주신 분들을 불안하지 않게 하고, ES 나르미 선생님들의 전체적 이미지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정보산업고등학교라서 최소한 컴퓨터 시설만큼은 최신의 고성능이리라 생각했는데 짐작과는 달리 컴퓨터의 사양이 낮아 좀 당황스러웠다. USB에 저장해 온 자료가 잘 뜨지 않아 쩔쩔매다가 간신히 연결이 되었는데 이번엔 빔 프로젝트의 위치가 화면과 맞질 않았다. 아직 선생님들께서 모이지 않은 틈을 타서 치마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책상에 올라가 천정에 붙어있는 빔 프로젝트의 방향을 조절해 놓았다. 선생님들이 모이는 시간을 위하여 내가 직접 촬영한 야생화사진과 조관우의 목소리로 부른 ‘꽃밭에서’를 삽입하여 만든 무비메이커로 분위기를 잡았다. 연수 신청인원이 70여 분이나 되어서 더 긴장이 되었는데, 학부모님들과의 체육행사가 겹쳐 40여 분 밖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ES나르미’라는 낱말조차 처음 들어보는 선생님들께 7월의 더위에 화장과 범벅이 된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준비해 간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달하려 입이 마르도록 열강(?)을 하였다. 준비해 간 스팟 중 퀴즈를 맞추는 분께 상품으로 드리려고 몇 가지 선물을 준비해 갔으나, 진행 미숙으로 한 분께만 드렸고, 오후 시간이 주는 나른함을 좀 더 재미있게 풀어가며 강의하지 못한 탓에 내가 원한 만큼의 반응이 나오지 않아 중간 중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는 헤프닝을 거듭하며 60분이라는 긴 시간을 꼬박 채웠을 때의 감흥은 아직도 팔뚝에 소름이 돋아날 만큼 강렬했다.
미숙한 강의였지만 나의 열정이 안쓰러웠는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몰입하며 경청해주시는 몇몇 선생님들의 빛나는 눈빛에 용기를 얻어가며 가장 기본적인 학교혁신의 의미와 현재 상황, 앞으로의 방향, 혁신의 필요성과 방법 등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았다. 교직 안에 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보고 느끼는 우리들의 위치가 생각보다 훨씬 더 비판적이고 냉정함을 인정하고, 갈수록 커지는 교육수요자들의 기대와 요구수준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학생 수 감소로 인한 학교의 존폐 여부와 교사의 위치에 대한 정확한 자각과 위기의식에서 학교혁신이 시작됨을 피력하였다. 강의가 진행될수록 좀 더 구체적인 학교혁신의 예와 혁신의지를 심어줄 수 있는 지식과 지혜가 모두 부족함을 절감하였고, 강의 내내 선생님들의 흥미와 집중도를 높이며 주제를 전달할 수 있는 강의스킬을 더 연구해야 하겠다는 반성과 욕심이 교차하던 복잡한 감정을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 말했던가?
한 술 밥에 배부르더냐고, 시작이 반이라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정보산업고등학교 선생님들께 고맙다는 마무리인사도 제대로 못한 것이 아직까지도 아쉽다. 내 강의가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나의 첫 성인 수강자였던 정보산업고등학교의 선생님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떨림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 강의에서는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이상하게도 나에겐 초등학교 강의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 청량중학교, 인천여자중학교, 연일학교를 돌고 나서야 어느 초등학교에 갈 기회가 생겼다. 그것도 다른 나르미 선생님의 개인사정으로 그야말로 땜빵(?)강의를 맡게 된 것인데, 같은 초등학교로 나간다는 것에 기분이 엄청 좋았다. 강의실에서 선생님들을 만나기 전까지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푸근하여 강의를 위한 셋팅도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하였다.
드디어 강의시작!
아뿔사! 그런데 이게 웬일? 그간 게으르게 살아온 나의 죄 값을 치루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학기말 성적처리로 바쁜 7월의 중순이 강의 시기로는 최악이었음은 인정하나 인간 ‘손성란’에 대한 지명도와 신뢰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나와 인연이 있는 선생님들의 대부분이 바쁘다고 연수에 참가하지 않았다. 또는 연수 장소에 모이기는 하였으나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오셔서 눈과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성적을 처리하거나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가?
강의주제가 혁신이어서 자칫 예민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강사가 되어 강단에 서면 강의내용과 강의스킬만이 내 몫임을 망각한 나의 경솔함이 조금은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그 자리에서 보여 지는 것 외에 나의 나약하고 소극적인 예전의 모습을 오버랩하고 있는 아는 사람의 눈빛, 그것은 정말 무섭다.
일단 전달자의 입장에 서면 떠드는 말과 행동이 대체로 평상시의 모습과 좀 닮아있어야 덜 부끄럽다. 다시는 부끄럽고 싶지 않다.
◈ 초대해 주신 학교의 혁신리더가 연출을 해주면 훨씬 더 효과적이다.
학교리더의 존함과 학교의 이름을 굳이 밝히고 싶은 곳이 생겼다. 인천함박초등학교가 바로 그 곳이고, 혁신리더인 이기소 교장선생님께서 바로 그분이시다. 일단 모든 선생님들의 동의하에 여름방학 이틀 전에 강의 일정을 잡았다. 언제나처럼 강의매체 셋팅을 위하여 강의시작 시각보다 30분 일찍 도착하였는데 연구부장님께서 강의 전에 반드시 교장선생님께서 면담을 하자고 청하셨다며 바로 교장실로 안내하였다. 교장선생님의 독서수준이 예사롭지 않음을 암시하는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을 지나 마주하고 앉으니, 미리 나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해 놓은 자료를 꺼내 놓으셨다. 자료라고 해봐야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기에, 어느 어느 학교를 거쳤는지, 무엇에 취미가 있는지, 과거의 투병생활에 대해 물으시고 현재의 건강상태를 염려해 주시더니 마지막에 나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시 한편을 보여주셨다.
세상에……, 딱 20년 전인 1986년 4월 효성동초등학교에서 임시교사로 2학년 어린이들을 잠깐 맡았었고, 그 때의 경험을 "첫 교단에서“라는 교단 시로 써서 교육과학연구원에서 발간한 작은 책자에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교육과 관련된 각종 간행물을 꼼꼼히 읽으시던 습관 때문에 나의 시를 읽으셨고 새내기 교사의 설렘이 잘 나타나 있어 이름을 봐 두었었는데 이를 기억하셨다가 20년이 넘어 까맣게 기름때가 묻은 책을 찾아낸 것이었다. 감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강의 시작 전 함박초등학교에 낭송 잘하는 선생님께 이 시를 낭송 시킨 후, 이 시를 쓴 새내기 선생님이 올해로 교직경력 20년을 맞았는데 과연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선생님들께 소개를 하면 그 때 앞으로 나오라고 주문을 하셨다. 이렇게 멋진 소개를 연출해 주시겠다는 제안을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이기소 교장선생님의 전략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일부러 갓 발령이 난 예쁜 새내기 여선생님께 나의 시를 낭송 시키셨고, 교장 선생님의 멋진 멘트 후에 컴퓨터 모니터에 얼굴을 숨기고 있다가 선생님들 앞으로 나갈 때의 그 극적인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최고의 순간이었다. 여느 초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친분이 있는 선생님들이 족히 열 분은 더 되는 무섭고 부끄러운 상황이 갑자기 강사에 대한 긍정적 호기심과 관심으로 돌변하는 분위기가 눈에 보일만큼 선명하게 느껴졌고 이에 힘입어 용기백배한 나는 정말로 잘 난 사람으로 최면이 되었고, 최면상태에서 여유 있고 자신감 있게, 간간이 유머까지 섞어가며 건방을 떨 수 있었다. 혁신리더인 교장선생님의 영향인지 아니면 함박초등학교가 갖고 있는 특수한 분위기 때문인지 강의를 듣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의 눈동자가 긍정적인 경청과 무엇인가 변화해 보려는 공감으로 한 시간 내내 반짝반짝 빛을 내는 즐거운 경험을 하였다. 물론 그 누구보다도 열린 눈빛과 적극적인 반응으로 끊임없이 응원의 신호를 보내며 자신과 함께 하는 함박선생님들을 격려하시던 교장선생님께서도 강의 내내 함께 하셨다.
그리고 또 하나, 강의가 끝나면 머쓱하게 인사하고 쓸쓸히 교문을 나서는 게 상례인데 무엇 때문인지 연구부장에게 이끌려 다시 교장실로 들어갔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오늘 강의하는 모습과 내용이 참 좋았노라고 격려해 주시며 책 한 권을 내미셨는데 공병호의 “명품 인생을 만드는 십년 법칙” 이었다. 본인이 직접 돈을 주고 사야 아까워서 책을 끝까지, 꼼꼼히 정독할 수 있다며 내게 주려고 사 둔 것이라고 하시며 앞으로도 계속 자신을 변화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그리고 10년 후 나의 모습을 기대한다는 말씀까지.
◈ 이 못된 놈의 성질머리! 머리 자르는 것으로 화풀이를 했는데…….
6번의 출강을 했던 2주일 동안 강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반드시 들렀던 곳, 미장원. 지난 1년 반 동안 치렁치렁 길었던 머리를 일주일에 세 번 씩 싹둑싹둑 여섯 번을 자르니, 여름방학 전 마지막 강의를 했던 7월 19일엔 완전히 선머슴처럼 짧은 커트머리가 되어 버렸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나르미 강사가 되더니 점점 세련되어 진다고 놀려댔지만, 성인들을 대상으로, 그것도 가르치는 일이 업인 선생님들을 고객으로 강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무슨 유머강사도 아니고 혁신강사라니! 영화배우 이영애의 유명한 대사 “너나 잘하세요!”가 항상 귓가에 맴돌았던 것은 지나친 자격지심일까?
“뭐? 연수구의 구성애?”
“꿈 깨라, 꿈 깨!”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일종의 자학의식으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던 상황에서 함박초등학교에서의 경험은 ES나르미가 된 후로 처음으로 알게 된 보람과 기쁨의 시작으로 나에겐 신경안정제와 같은 약효를 주었다. 교장선생님의 조그마한 연출이 강의를 하는 나르미에게도 강의를 듣는 선생님들에게도 희망과 비젼의 길을 열어준 것이었다.
◈ 학교혁신이건 자기혁신이건 시작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데서 출발한다.
어린아이같이 어이없는 이유로 혁신내부강사에 공모하여 덜컥 선발이 되고, 훈련과정을 거쳐 몇 번의 시범강의와 학교현장에 직접 찾아가 실시했던 실제 강의경험을 갖기까지 겨우 5개월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날밤을 새우며 자신을 연마해야 했던 시간들은, 헐렁헐렁 스트레스 없이 살던 지난 5년을 대신할 만큼 압축된 것이었다.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혀 변화하는 사회의 거센 바람으로부터 얼마만큼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고, 선생을 휠씬 뛰어넘는 기발한 제자들과의 생활균형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고단한 직업이라는 핑계로 자기경영이나 개발,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새로운 모색과 변화, 기회의 창출에 얼마만큼은 둔감해도 견딜 수 있는 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진실을 이야기할 때이다.
혁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게다가 학교혁신은 더더욱 모르겠다고, 그래서 너무나 답답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당신이나 나를 한 번 자세히, 그리고 냉정히 들여다보자, 정말로 모르고 있는지, 무엇을 바꿔야 할 지, 무엇을 버려야 할 지 정말로 모르고 있는지를 말이다.
학교만이 갖는 특수성 때문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함으로 인한 비효율성 때문에 빚어지는 교육적, 경제적, 문화적, 인간적 손실이 얼마나 큰지,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하나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거꾸로 조금씩, 아주 천천히 우리 스스로 들춰내어 치료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일에 필요한 용기와 방법과 정보를 나르고 알리는 사람들이 바로 ‘ES나르미’라는 이름으로 선생님들 곁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교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영혼을 흔들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다른 집단의 한 개인이 변화하는 것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한 명의 교사가 자신을 믿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갖고 실천하는 것 자체가 바로 학교혁신이요, 교육혁신이다. 바람직한 도전과 변화는 그 승패와 관계없이 이미 성공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를 통하여 잠재적으로 삶의 패턴을 배우는 수많은 교육수요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믿고 따르며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힌트를 얻고 있는 삶의 선배가 그 자신은 스스로를 불신하고 맹목적인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당신까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선생님들이 스스로를 믿고 먼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우리를 따르는 제자들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켜내야 하는 이유이다.
아직도 왜 혁신이 필요한지, 왜 선생님들께서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믿고 확신하며 한 걸음 먼저 도전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곤란하다.
◈ ES나르미가 주는 고통 때문에 행복하다?
2006년 8월 31일, 드디어 ES나르미 강사 성적표를 받았다.
나 역시 당사자 앞에서는 맘에 없는 립 서비스(Lip Service)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나르미 강의의 두려움이 컸던 만큼 뻔히 알고 있는 립 서비스에도 상당한 위로를 받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단 60분 만을 보여주었을 뿐인데 선생님들은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발견해 주었다. 결코 말로는 해주지 않았던 강도 높은 질책에 한동안 할 말을 잊을 만큼 부끄럽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였다. 집에 와서도 며칠 동안 나의 평가서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매긴 나르미 선생님들 모두의 평가서를 읽고 또 읽었다.
도대체 어떻게, 어디까지, 그것도 단 한 번에 전달하란 말인가?
전달주제와 범위를 정하기까지, 자료를 만들 때의 고단함과 적절성에 대한 고민으로 보낸 시간, 학교업무를 쌓아 놓고도 강의 의뢰만 들어오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헉헉거리며 찾아다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앞으로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강의내용을 짜야하나 몹시도 혼란스러웠다.
‘으으, 역시 내가 할 일이 아닌 겨!’
그렇게 우울한 며칠을 지내다 갑자기 내가 강의 때마다 인용했던 헬렌 켈러의 말이 떠올랐다.
“ 태도 하나를 바꾸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맞다. 내가 혁신 나르미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선생님들 앞에 감히 섰을 것이며, 나에 대해 이렇게 자세한 관찰과 평가를 받아볼 수 있단 말인가?
나 역시 연수가 재미없을 땐 책을 보거나 아이들 학습지를 채점하거나 친구에게 문자도 보내며 딴 짓을 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아니 심지어 연수를 하러 모일 때면 아예 딴 짓거리 하나쯤을 핸드백에 넣고 가는 준비성(?)을 보이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러다가도 내게 필요한 내용이면 귀가 저절로 열리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내용은 받아 적기도 하고, 도움은 안 되어도 재미난 이야기가 들리면 솔깃하여 듣곤 하던 경험을 갖고 있으면서 얼마나 되었다고 수강자의 모습을 잊었을까?
그래, 사실 내가 좀 재미가 적은 사람이다. 이걸 좀 바꿔보자 이번 기회에. 무턱대고 수다만 떨지 말고 얘기를 좀 맛깔나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떠들어보자. 혁신을 무섭고 무겁고 거창하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강의하고 다니면서 스스로는 훨씬 더 무섭고 대단하고 어려운 방법으로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닌 지 반성해보자. 나를 믿어야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기는 것처럼, 나를 객관적으로 봐주는 새로운 관중이 있음에 감사하고 되도록 많은 수강자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혁신 나르미가 되기 위해 나를 향해 요구해 온 것들을 한 번 적용하고 시도해 보자. 이것 또한 자기변화를 통한, 자기 경영을 통한 혁신의 한 가지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나의 강의를 들은 많은 선생님들께서 나의 혁신도우미가 되어 성심껏 주신 팁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각오로 재도전해보자.
◈ ES 나르미는 선생님들의 해결사도 정답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 ES 나르미는 우리 선생님들과 친구가 되어 먼저 수집한 혁신에 대한 정보를 물어다 주는 새의 역할을 하는 또 한 명의 동료 교사이다. 언젠가 CS,ES 나르미 연합연수 때 하신 이병옥 선생님의 말씀은 정말 공감이 가는 명언이다.
“ES는 이 세상을 나르는 새이고, CS는 세상을 나르는 새야”
그리고 합창(‘아빠의 청춘’ 가락에 맞추어)
“이 세상에 나르미 맘, 다 같은 마음!
아들, 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
원더풀, 원더풀 ES 나르미!
원더풀, 원더풀 CS 나르미!"
‘혁신 써포터즈’로 각 급 학교를 찾아다니며 선생님들과 함께 고민하는 ES 나르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용기와 힘을 주시면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발전하는 모습으로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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