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나는 게으른 뒤통수 치기 선수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읽고-
손 성 란
나는 내가 제법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다.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차별 없이 내 마음과 형편이 허락하는 한 정성을 다해 섬긴 결과 고부갈등 없는 며느리로, 효녀 소리 듣는 딸로 그다지 부끄럽지 않은 자식노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고, 최고의 엄마는 아니지만, 두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친구처럼 허물없고 다정한 모자지간을 유지하려 늘 노력하였고, 학업 부진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거나 컴퓨터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을 때에도 제법 자제심을 가지고 우아하게(?) 해결하려는 의지를 실천한 결과, 친구들로부터 ‘천하태평 계모’라는 기뻐해야 할지, 속상해 해야 할지 모르는 별명도 얻었다.
또 가장 취약점인 바람직한 아내의 몫에서는 요즘 대세인 섹시한 아름다움으로 남편을 사로잡는다거나, 알뜰살뜰 살림을 깔끔하게 잘하거나 재테크를 하여 재산을 뻥튀기하는 재주는 없지만, 밤을 새며 수다를 떤다든가, 함께 산책이나 등산, 자전거 타기 등을 하며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 아주 솔직하게 공유, 공감하는 것으로 친밀감과 신뢰를 유지하고 있어 별문제 없이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해 왔다.
게다가 초등학교 교사로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와 제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어느 만큼은, 아니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솔직히 내면 깊숙이 스스로 괜찮은 선생으로 자부하고 있었다.
되돌아보면 교단에 몸담아 온 20여 년 세월의 하루하루 갈피마다 아이들과의 단절되지 않는 관계유지를 위하여 각종 대화법, 칭찬법, 미술치료진단법, 독서를 통한 정서접근법, 상담기법, 학습지체아를 위한 해결법, 과잉행동장애아에 대한 대처법 등 수많은 이론들을 현장에 접목해가며 아이들의 성장에 조금이라도 유익한 거름과 토양이 되고자 부지런을 떨었고, 거의 해마다 수업연구로 대표 수업도 했다. 또 서로가 미루는 과중하다 싶은 학교업무에서도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도 힘들지,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능력이 좀 부족해도 어차피 맡은 일이면 투덜거리지 말고 기분 좋게 해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즐겁게 해내려 애쓰며 지내왔다.
그런데 참 엉뚱한 시점에서 500g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물건 하나가 나를 혼란에 빠뜨리고 내 삶 전체를 부끄럽게 만들어버린 사건이 생겨버렸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책 한 권 때문에 생긴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요, 내 인생의 대 반전이었다.
사실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한 것에는 다소 어패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시지 않은 감동과 파동의 편린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얘기를 걸었더니, 십중팔구 이 책의 제목은 잘 알고들 있었다. 그러나 책을 꼼꼼하게 완독한 사람은 열 명에 한 명도 만나기 어려웠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매스컴이나 사람들에 입에 심심찮게 회자되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대!’라는 명제는 자연스럽게 나의 뇌리 깊은 곳에 각인되었다가 학부모 총회 때나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나 상담을 할라치면 나도 모르게 꼭 끼어들어 인용하는 감초 같은 대사 중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남의 음식 훔쳐다가 씹지도 않고 삼킨 뒤 펄펄 뛰는 선무당 같은 내 자신이 또한 더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다른 직업도 아니고 교사라는, 사람을 다루는 업종에 있는 선생님들의 상황이 대개 나와 비슷하다는 사실에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적어도 교사들만은 꼭 읽어 두었음직한 아니, 꼭 읽어야만 하는 교과서 같은 책인데 하는 뒤늦은 깨달음에 무식해서 용감했던 나의 깊은 치부까지 과감히 들어내며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책을 읽지 않았어도 이미 읽은 듯 착각을 하며 함부로 인용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의 제목에 그 이유가 있다. 굳이 교육현장에 있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사소한 인간관계와 생활 속에서 크고 작게 칭찬이 주는 긍정적 효과를 수없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고래 뿐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이면, 아니 무생물조차 그에게 보내지는 긍정적 암시와 에너지의 파급효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가 정확한 실험과 연구결과에 의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미국의 한 거리에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이름을 빌어 열 두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물론 햇볕이 양이나 토양성분 등 모든 조건이 같았음을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예수님을 팔아 자살을 했던 ‘유다’의 이름을 딴 나무가 채 1년을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 죽어버렸다고 한다. 이 열 두 나무가 심어진 거리를 지나며 그저 사람들이 “저게, 유다 나무래!”, “아아, 그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했을 뿐인데 말이다.
또 한동안 우리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던 ‘에모토 마사루’라는 일본인이 펴낸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사진집에서 보여준 물의 결정이 우리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었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등의 뜻이 담긴 단어를 세계 각국의 언어로 말하거나 종이에 써서 물에게 들려주거나 보여주면 매우 아름답고 정확한 육각형의 결정을 보여주었고 ‘네가 싫어, 죽여 버릴 거야’등의 부정인 말이나 욕을 들려주었을 때는 흉측하게 일그러지고 파괴된 물의 결정을 보여 주었다. 우리나라의 대표민요인 아리랑이라는 민요를 들려준 물의 결정은 하트모양이 깨어질 듯 한 가슴 저미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쇼팽의 이별의 곡을 들려주었더니 물의 결정이 잘게 쪼개지면서 서로 헤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욕설이나 헤어짐, 부정적인 말이나 음악보다 더 좋지 않은 것이 ‘무관심’이라는 사실이었다. ‘에모토 마사루’의 사진집을 본 의심 많은 어는 일본인 독자가 유리병 세 개에 각각 밥 3덩이를 넣고 초등학생인 아들을 시켜 ‘고맙습니다, 망할 놈, 아무 말 없이 무관심하기’를 실험한 결과 하나는 발효한 상태로 누룩처럼 푸근한 향기를 품었고 또 한 병에는 부패하여 새카맣게 변한 밥,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너무 빨리 썩어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부패한 밥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망할 놈'이라는 말을 건 밥보다 무시당한 밥이 더 빨리 더 심하게 썩었다는 결론이다.
또 어느 책에선가 간단한 양파실험이 아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할 것이라는 구절을 보고 지금 담임하고 있는 우리 반 3학년 어린이들과 함께 했던 실험에서도 칭찬과 비난의 효과는 극명하게 나타났다. 즉 두 개의 유리컵에 물을 담은 후 밭에서 직접 캔 싱싱한 양파를 담근 뒤 일주일 동안 서로 다른 암시를 주는 것이다. 즉 하나의 양파에게는 ‘너 참 예쁘게 잘 자라는 구나, 네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보니 나도 참 기뻐’등의 긍정적 말을 들려주고 나머지 하나에게는 ‘넌 왜 이렇게 못생겼니? 너만 보면 내 기분까지 나빠져, 차라리 죽어 버려, 이 바보야!’ 등의 부정적인 말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결과는 일주일도 안 되서 나와 버렸다. 물론 칭찬 받은 양파는 푸른 싹이 싱싱하게 돋아나오며 예쁘고 튼튼하게 자랐고 비난과 욕설을 들은 양파는 밑 부분이 썩으면서 약하디 약한 연두빛 싹이 나오다가 금새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이 실험으로 우리 반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욕을 하거나 비난하는 말, 부정적인 말을 하면 서로 서로 입을 막아주는 등의 과민한 반응을 하며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백 마디의 말보다 이 간단한 실험이 아이들 가슴 속에 깊이 박혀버린 것이다.
이런 일련의 긍정적 암시와 칭찬의 효과에 대해 떠도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오히려 이 책을 읽지 않고도 읽은 듯한 착각과 포만감을 준 원인인 듯 싶다.
책의 첫 장은 ‘웨스 킹슬리’라는 일 중독자에 가까운 주인공이 올랜도에 회의 차 갔다가 막간의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우연히 보게 된 범고래 쇼를 보게 되면서 시작 된다.
범고래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몸집과 날카로운 이빨을 자랑하는 ‘샴’을 순한 양처럼 조정하는 조련사의 능력에도 놀랐지만 쇼를 할 때의 범고래 ‘샴’의 즐거움이 관중들에게 전해서 물벼락을 맞고도 기쁜 미소를 짓는 관중들의 반응과 웨스 킹슬리 자신의 감동과 기쁨이 몹시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져 용감하게 조련사인 데이브를 찾아가 그 비결을 묻는다. 조련사라는 말에서 느껴지듯이 지능이 높은 고등한 인간이 하등한 동물을 다루는 특별한 비법을 기대했던 웨스는 데이브로부터 오히려 샴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엉뚱한 대답과 자신이 다루고 있는 범고래 ‘샴’이 무시해도 좋을 만한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라 오랜 세월 함께 놀면서 서로 간의 신뢰를 쌓은 결과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되었으며 이 관계를 위하여 데이브가 샴을 헤치지 않을 것이라는, 또 샴이 데이브를 잡어먹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쌓이기 까지 끝없이 기다린 인내의 결과임을 듣게 된다.
범고래 샴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을 결부하여 칭찬이 얼마나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만들어내는지 차례로 일러주는 책의 흐름은 샴의 쇼를 보았을 때, 또 데이브와의 대화를 통해 느꼈던 웨스의 놀라움만큼이나 나를 놀라게, 또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은 한 순간도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였고 웨스가 샴의 교훈을 자신의 가정과 회사에 적용하여 성공적인 변화를 이루어내는 마지막 장까지 숨을 죽이며 읽어 내고야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이 책이 주는 놀라움은 칭찬이 주는 긍정적 효과와 삶에의 전환을 위한 거대한 에너지에도 있었지만, 칭찬에 대해 좀 안다고 자부하던, 가정이나 학교에서 나름대로 이 칭찬의 기법들을 능숙하지는 않지만 늘 적용하며 실천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었는지를 확인하는데서 더 컸다고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다.
많은 아이들을 한 교실에 가둬두고 목적한 곳까지 안전하고 즐겁게 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교사의 역할이란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수정이 필요한 아이들을 적시에 교정해 주는 것이 본분이라고 여겼고, 성장기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수정이 불가피한 교육의 대상으로, 옳다고 검증된 쪽으로 억지로 라도 끌고 가는 것이 당연한 교사의 도리요 역할이라고 믿어왔던 나에게 이런 쪽은 그저 못 본 척 눈감아 주고, 끝없는 관찰을 통해서 털끝만한 장점이라도 찾아내어 격려하고 확인시키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임을 반론의 여지없이 찬찬히 들려주는 데이브와 앤 마리의 논리는 나의 교직생활 전체는 물론 17년의 결혼생활과 자녀교육 문제까지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저 잘난 맛에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열심히 정성스럽게 살아냈다는 위로와 아이들에게 죄짓지 않으며, 페스탈로치는 아니어도 아이들의 가슴 속에 작은 빛과 희망으로 남고 싶었던 열망이 있었기에, 훌륭한 선생은 아니어도 좋은 선생으로는 기억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지탱해 왔던 지난 세월들이 참담하게 무너지면서 나를 거쳐 간 무수한 제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는 걸까하는 아픈 질책이 몰려오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자식이나 부모님, 남편에 대한 나의 태도와 방식으로 인한 개인적 삶에 대한 부분도 다시 뒤집어 새로 시작해 보아야 한다는 압박도 컸지만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가치가 부여된 교사라는 직업의 한 복판에 선 선생으로써의 내 역할과 태도에 대한 자각이 이 작은 책 한 권으로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날 안내했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난 그동안 한 낱 자만한 조련사였던 것이다.
그것도 자기가 훈련해야 할 상대의 특성에는 개의치 않고 오직 훈련해서 얻어내야 할 동작에만 초점을 맞춘 무지막지한 조련사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닌 삼류 훈련교관이었다는 뼈아픈 자각이 참으로 내 삶 전체를 통째로 부끄럽게 만들었다.
가장 가슴이 찔렸던 부분은 좋은 선생은 커녕 어린 제자들의 뒷통수를 망설임 없이 마구 쳐대는 뒷통수 치기 선수였다는 자각이었다. 수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선생이라는 명분과 역할에 대한 잘못된 책임감으로 가만히 지켜보다가 잘못된 점이 나오면 옳다구나 하고 지적하고 야단치면서 오히려 목이 터지게 잘못을 지적하는 내 모습이 참교사라고 착각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란 말인가!
범고래 샴을 결코 무시해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아이들은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과 높은 지력을 가진 상상을 초월한 놀라운 존재인가? 그런 아이들을 샴보다도 훨씬 더 단순하고 야비하고 편리한 방식으로 훈련하려 했던 어리석음이 책 속의 활자만큼이나 선명하게 읽혀지면서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 없이, 또 선생과 제자라는 특별한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아이들 앞에 군림하며 당연히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행동수정에만 급급하여 뒷통수 치기에만 열을 올렸고 어이없게도 그 뒷통수 치는 사업(?)이 바로 나의 의무와 업무요, 나나가 성과라고 여겼던 그 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되돌려야 할까?
쏟아져 사방으로 분출하는 아이들의 긍정적 에너지에는 제대로 반응한 적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미세한 관찰 없이는 불가능한 부정적 에너지에만 집중하여 그것을 찾아내는데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 아니 반복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칭찬을 통한 자발적 동기부여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효율적이라는 것에는 백 번 동의하며 어느 정도 시도해 볼만한 욕심과 용기도 생겼지만,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전환에의 전략과 지혜가 주인공 웨스처럼 나에게도 커다란 벽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원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느냐 하는 문제는 앤마리와 같이 명확한 답을 알고 있는 좋은 스승을 갖지 못한 나에게 불안의 요소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다시 일어나 보기로 했다.
‘뒷통수 치기 선수가 아니라 고래반응의 대가로 다시 태어나리라!’
아니 고래반응의 대가가 아니고 ‘고래반응 삼류 선수’라도 좋다. 최소한 뒷통수 치기 선수는 아니어야 함을 이제야 깨달았기에 부끄럽더라도 출발선 앞에 다시 설 수 있는 용기를 반드시 내야만 하는 자리가 바로 선생이라는 나의 자리임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킨다.
잘한 일을 관찰하고 찾아내어 끊임없이 칭찬하고 격려하면 틀림없이 앞으로 나아가던 샴과 웨스의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적대관계에 있던 회사동료들의 변화를 스무 평의 교실에서 나는 나와 아이들과의 새로운 도전과제로 삼고 하나씩 실천하려고 한다. 아니 교직을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반드시 실천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 꼬박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접하게 된 나의 게으름에 가슴을 치면서도 학교에 불고 있는 혁신의 바람이 거세게만 느껴지는 올 해, 나에게 그리 늦지만은 않았다는 작은 희망과 위로를 주는 깊은 만남을 하게 된 인연에 안도와 감사의 마음도 가득하다. 왜냐하면 나의 긍정적인 시선, 작은 칭찬, 첫사랑을 대하듯 소중하고 애틋하게 아이들의 모든 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려는 시각과 태도의 변화만으로도 이미 내 안의 혁신의 절반은 이루어졌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고래반응과 아이들의 능력을 좀 더 새롭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함으로써 삶의 한 귀퉁이부터 조금씩 조금씩 진전시키려는 노력, 내 앞에 지금 있는 이 사람이 바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마지막 한 사람임을 항상 기억하고 그에게 집중하여 가장 끈끈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자. 아이들이 아무리 어려도 샴보다는 크지 않은가?
그리고 가끔은 이 일을 잘 수행하는 나 자신도 거울을 보며 칭찬해 주자.
그래야 힘을 잃지 않을 테니까…….
사실 우연한 기회에 교원내부강사인 ES 나르미로 활동하면서 가장 강의하기에 까다롭다는 선생님들 앞에 서기 위해 많은 책들과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강의 주제가 학교혁신의 기본마인드를 선생님들께 심어주기 위한 것이니 혁신에 대한 책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아예 교육혁신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의 목록을 만들어 놓고 차례대로 읽어댔고, 여건이 안 되면 인터넷에 나온 발췌문이나 요약문이라도 읽고 기억하려 애썼다. 그렇게 해서 겨우 건져 낸 몇 개의 명제들을 강의에 써 먹기도 했다. 더욱이 가장 웃긴 것은 이 책은 읽지도 않았으면서 칭찬기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제일 먼저 내뱉은 멘트가 바로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잖아요, 다들 들어보셨지요?” 하는 것이었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락없이 “예!”로 힘차게 돌아왔다. 이런 반응들은 어느 새 나 자신까지 쉽게 속여 버려서 나는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은 사람이 되었고 대답한 대다수의 선생님들도 모두 읽어본 것으로 믿게 되었다. 아니 사실 나만 빼고 모두들 읽었다는 말을 듣게 되길,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기도했다.
이런 나의 마음 때문인 지, 이 책을 읽은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만나는 선생님들 마다 이 책 읽어봤느냐고 묻는 일이었다. 결과는 서두에 쓴 것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제목만 알고 계셨지만 말이다.
나르미 활동을 해 온 지난 1년 6개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도 참 많았다. 학교 업무와 수업만으로도 파김치가 되는 나의 체력으로 선생님들의 의구심에 찬 수 십 개의 눈초리에 기죽지 않고 60분의 강의를 해 내는 것은 참으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마음의 방탄조끼를 한 벌 걸치고 비장하게 강의에 출정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 일은 나 자신의 삶의 태도를 참 많이도 변화시켰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너무 혁신에 관한 책만 편식하더니 아예 세뇌가 되어 혁신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니냐고 놀려대기도 하지만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많은 변화들을 일일이 끄집어내어 설명하기는 어렵다. 물론 나르미로서의 목적은 많은 선생님들을 찾아가 혁신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법 등을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정하는 데에 있지만 나 자신의 변화 없이 앵무새처럼 외운 내용을 지껄여서는 청자에게 아무런 변화나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어쩌면 선생님들에게 기죽지 않으려는 현학적 자세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류의 감성에 호소하는 책들보다는 대기업의 성공한 CEO의 성공전략이나 변화와 혁신전문가 또는 자기변화를 통한 새로운 삶의 성공을 창출해내려는 변화경영전문가들의 책들을 먼저 섭렵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런 류의 책들을 먼저 접하여 어느 정도의 혁신마인드가 형성된 상태에서 이 고래이야기를 읽었기에 감동이 더 했고 더 정확히 자기성찰에 접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길게 내가 느꼈던 놀라움과 당황스러움과 나도 반드시 고래반응의 대가인 선생님 되어야 하겠다는 포부를 늘어놓아도 다 표현할 수는 없다. 가장 정확하고 좋은 방법은 모두가, 특히 누군가를 가르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사실 가르침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라고, 아니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또 한편으로는 나 말고는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 간단하면서도 알기 쉽게 쓰여 진 인간관계 최고의 비밀을 다른 사람은 좀 모르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면도 발동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장은 나의 남편이 이 책을 정독하고 나의 아이들과 나를, 또 사업장에서 직원들을 대하는 노하우를 터득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남편이 독서를 하는 유일한 장소인 화장실 앞에 무심한 척 이 책을 놓아두려고 한다. 며칠 후 아내인 나와 꾸러기 두 아들에게 쏟아내는 변화된 대화의 첫마디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자, 이 책을 읽은 내 자신이 대견하고 읽은 것을 실천해보려는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행운이야!”라고 떠들어대며 넌 참 잘하고 있다고 다독다독 가슴을 두드리며 힘찬 눈빛으로 거울을 보며 나에게 칭찬을 보낸다.
“손성란, 넌 참 괜찮은 사람이야, 아이들과의 관계도 더 좋아질 것이고 더 좋은 엄마, 더 좋은 아내, 더 좋은 자식으로 날마다 인정받고 칭찬받을 거야, 더 중요한 것은 넌 참 좋은 선생님이야, 아이들의 좋은 점을 찾아 끊임없이 칭찬해주고 발견해주고 격려해 줄 줄 아는 대한민국 최고의 참 스승이면서 고래반응 선수야! 데이브처럼, 앤마리처럼, 웨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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