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전 거
밝은 꽃 성란
구월이 오기도 전에, 이미 분수처럼 여덟 잎 모두를 펼쳐 한여름 열기를 와글와글 뿜어대는 수다스런 코스모스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도, 칭얼거리는 가을바람의 끈질긴 구애에도 끄떡없던 노란 소국의 당찬 입들이 예고도 없이 일제히 해님처럼 환하게 벌어져 무심히 지나치는 뒷덜미를 잡아 사정없이 참아왔던 소박한 향기들을 토해내는 것도, 앞서 가는 바람을 붙잡아 빨갛게 달아오른 내 볼에 비비면,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던 그의 싸늘한 뒷모습처럼 차가운 냉기가 서늘하게 스며드는 느낌하며, 뉘 집 강아지 인지 여주인의 가슴에 안겨 츄리닝 지퍼 사이로 귀만 보이는데 잠깐 고 동그란 눈과 윙크를 나눈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스친 것 같기도 한 알쏭달쏭한 안타까움하며, 한여름에도 털모자에 긴 점퍼를 입고 햄버거를 먹으며 버스를 기다리는 키 큰 외국인의 파란 눈을 관심 없는 척 슬쩍 흘겨보고는 쌩 튕겨나가는 스릴하며…….
키가 작은 나에게 내 눈높이 이상의 것들을 적당히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자전거가 나는 참 좋다. 아이들과 수학여행 가는 버스에서 운전기사 바로 옆 보조의자에 앉아 훤한 앞 유리로 보는 풍경이 너무나 선명해서 평생친구인 멀미도 잊은 채 풍경에 빠져버릴 때처럼, 승용차를 몰며 사방 막힌 공간에서 앞으로만 내다보는 풍경과는 비교도 안 되는 생생함이 온몸으로 전해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전거가 주는 속도감은 때에 따라 부지런하기도, 게으르기도 한 변덕스런 내 성격과도 잘 맞는다. 걷는 것보단 빠르고 자동차보단 느린 이 두발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타 부드럽게 바람을 가르며 미끄러지는 맛 또한 일품이다.
사실 내 자전거는 누구에게 자랑할 만한 위용을 갖추진 못했다. 바퀴는 26인치로 제일 큰 크기지만, 굵기는 산악자전거의 반도 안 될 만큼의 얇고, 몸통은 온통 연두 빛, 앞머리엔 하얀 바구니까지 달려 있어 한 눈에도 ‘아줌마 전용’임을 알 수 있는 그야말로 도시형 생활자전거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겁이 많던 내가 시골 할머님 댁 앞마당에서 군에서 막 제대한 삼촌과 삼촌 친구 서 너 명을 붙잡아놓고 막무가내로 타는 법을 가르쳐달라 졸랐던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고, 자전거 역시 농협에서 비료를 사오거나 삭정이를 주워 지게 대신 실어오던 거대한 짐자전거였다. 하루에 한 번 밖에 버스가 다니지 않고 전깃불조차 없었던 깡 시골에서 유일한 교통수단이던 자전거는 당시의 내 눈엔 최고의 날개였기에 한 번 넘어지면 손바닥 거죽이 밀리고 무릎이 깨지는 수난에도 만화에나 나올 법한 요란한 비명을 질러가며 포기하지 않고 배웠던 생애 최초의 적극적인 도전이었다.
그래서 일까? 지금도 성능 좋은 고급 자전거 보다는 예쁜 자전거에 눈이 간다. 진흙투성이의 질척질척하고 꼬불꼬불한 논둑길을 달리는 것도 아닌데 두꺼운 바퀴에 둔탁한 모양을 한 자전거를 탈 이유가 내게는 없다. 이런 내 속을 꿰뚫기라도 한 듯 외국을 자주 드나드는 친구 남편들은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사오는 대신 희귀한 자전거 사진이 있는 광고책자를 구해다 주거나 자전거에 다는 작은 장식품 등을 선물하기도 하고, 몇 년 전에는 인터넷에서 찾아낸 8인치짜리 초미니 자전거를 애써 구해다 주기도 할 만큼 나의 자전거에 대한 애착은 소문이 나있다. 덕분에 우리 집 베란다는 화초 화분 대신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자전거 차지가 되어버렸다.
지금 살고 있는 연수구로 이사를 하고, 이삼년 지난 5년 전쯤부터 막내아들까지 저 혼자 학교며 학원을 다닐 수 있게 되고 나도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발령이 나면서 오랜 시간 나와 아이들의 발이 되었던 승용차는 지하주차장에 갇혀 애물단지 액세서리로 전락 했고 특별한 날이 아니면 늘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한 번도 본 적 없는-요즘엔 12인치 자전거를 흔히 볼 수 있지만-초미니 자전거나 초등학생 들이나 타고 다닐 법한 20인치 바퀴의 작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특이하고 귀여운 디자인과 작은 크기가 초등학생인 제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안전문제 때문에 자전거 등교가 금지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모범적으로 자기 일을 수행한 상으로 운동장 몇 바퀴를 돌게 해주는 선심이 학급경영을 수월하게 해줄 만큼 매력적인 강화수단으로 작용했다. 덕분에 큰 비가 오거나 운행이 불가능할 만큼의 눈이 오거나 한 날이 아닌데 자전거를 타고 가지 않으면 아이들 성화에 견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한 겨울에도 자전거를 끌고 나가야 하는 웃지 못 할 경험도 하게 되었다. 인천에서 열리는 세계도시축전과 맞물려 급하게 자전거도로가 만들어진 올 여름 훨씬 전에도, 인천에서는 나름 계획 신도시인 연수구에는 체육공원과 연결된 자전거도로가 꽤 긴 길이로 조성되어 있어서 30도를 넘나드는 땡볕의 한 여름에도 등줄기까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무성한 잎들이 아치를 이룬 나무터널 사이를 생각에 묻혀 끝없이 달리는 새벽하이킹의 묘미를 맛볼 수 있으니, 벚꽃 만발한 봄이나 온통 노랗고 빨간 단풍사이를 가르는 아찔한 가을, 가끔 머리 위로 툭 하고 떨어지는 눈꽃의 낙화에 화들짝 놀라는 하얀 겨울의 정취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의 기쁨을 선물해 준다.
전에 다니던 학교보다 조금 먼 곳으로 발령이 난 지금은 몇 번만 움직여줘도 반경이 커서 쑥쑥 앞으로 나가는 커다란 바퀴의 자전거로 출근을 한다. 긴 머리에 반 정장 옷, 구두를 신고도 천연덕스럽게 자전거를 타는 나는 우리학교에선 ‘자전거 타는 쌤’으로 통한다. 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교감선생님께서도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 하시고, 과학조교와 급식 조리원 중 몇몇도 자전거 매니아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젊지도 않은 여선생이 처음엔 좀 이상했는지 뜨악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들도 지금은 승용차로 출근을 하면 어디 출장 가시느냐고 인사를 해온다. 몇 년 전 수술했던 발가락뼈에 문제가 생겨 재수술을 한 올해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자전거가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걷는 것 보다 자전거 패달을 밟는 것이 하중을 덜 받아 오히려 더 편하고 물리치료의 효과까지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사연과 역사가 얽혀 자전거와 나는 이미 한 몸이다. 저학년 아이들은 내 이름은 몰라도 “자전거 쌤!” 을 외치며 달려와 인사를 하고, 고학년 아이들은 학교 담장에 묶어 놓은 자전거 지킴이가 되어 수시로 자전거의 안전을 보고하며 한 번씩 타고 싶어 아양을 떠는데 슬쩍 튕기며 인심 쓰는 재미도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놀이로 자연과 하나 됨은 물론 아이들 마음속으로도 거침없이 드나들며 몸의 건강은 기본이고 정신을 맑게 하며 비싼 기름절약에 거창하게는 환경오염도 막을 수 있으니 이것을 일석 몇 조라 해야 할까?
열두 살 때부터 사십년 가깝게 자전거에 씌운 콩 깍지가 쉬이 벗겨지지 않는 이유이다.
'창작밭 > 산 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선생님, 자신을 믿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0) | 2009.09.30 |
---|---|
[스크랩] 아, 강화도! (0) | 2009.09.30 |
[스크랩] 말이 없는 아이들 (0) | 2009.08.12 |
[스크랩] 영화 레인오버 미(Reign over me)를 보고 (0) | 2009.07.17 |
[스크랩] 친구들아, 그래도 난 사람이 좋단다 (0) | 2009.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