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ching)을 학생과 공유하세요.
William Glasser의 What is Learning에 의하면 학생들은 아래와 같이 배운다고 나와 있습니다.
"We learn... (우리는 이렇게 배웁니다.)
10% of what we read, (읽기만 하면 10%를 배우고)
20% of what we hear, (귀로 듣기만 하면 20%를 배우고)
30% of what we see, (눈으로 보기만 하면 30%를 배우고)
50% of what we both hear and see,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면 50%를 배우고)
70% of what is discussed with others, (남들과 배운 것을 토론하면 70%를 배우고)
80% of what we experience personally, (배운 것을 직접 경험하면 80% 배우고)
95% of what we TEACH to someone else.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 배운 것의 95%를 익히게 됩니다.)"
가르침을 공유하는 것은 가장 훌륭한 교수법입니다.
-콘텐츠가 있는 말-
교사인 내가 얼마나 풍부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여 대화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의외로 많은 교사들이 같은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하고, 알맹이 없는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
교사들이 구사하는 말의 상당 부분은 지시, 훈계, 명령, 확인 등으로 채워져 있다.
가끔 교사들이 학생과 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곤 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거의 대화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방적일 때가 많다. 학생을 불러다 놓고 뭔가 잘못된 행위를 확인하고 인정하게 한 다음
다음부터는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을 받고는 학생을 놓아준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패턴이
몇 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 대화에서 지시, 훈계, 다짐, 확인을 빼면
불행하게도 '내용'은 없다. 정말 교사가 학생과 더불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호하다.
교사의 화법을 좌우하는 요소에는 형식적인 것과 내용적인 것(콘텐츠)이 있다.
말의 크기, 속도, 음색, 표정, 제스추어 등은 형식에 속한다. 물론 이것들도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역시 화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내용없는 말은 학생들을 절대로 감동시킬 수 없다.
교사화법의 풍부함을 결정하는 콘텐츠는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까?
책을 많이 읽으면 풍부한 스토리가 생길까? 스피치 연수를 받으면 좀 나아질 수 있을까?
어느 정도 개선은 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풍부한 대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상대가 학생이든, 동료교사이든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의 말을 충분히 들어보려 할 것이다.
성실하게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은 내가 풍부한 문장을 구사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둘은 지식과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종횡으로 연결하여 내것으로 녹여내는 힘이다.
나는 이것을 '통합적 안목'이라 불러왔다. 통합적 안목은 교사들에게 부족한 능력이기도 하다.
통합적 안목은 정답을 구하듯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슨 연수 한 번 들었다고 해서
구축되는 능력이 아니다. 통합적 안목을 키우려면 우선 사물을 대할 때 '기능적으로 보지 않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여기서 기능적으로 본다는 의미는 교사 자신의 전문성과 능력을 신장하기 위해
'한 가지 배워서 한 상황에 적용하겠다는 도구적 관점'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이 교사를 오히려
탈전문화시킨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통합적 안목은 '좋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무엇이 좋은 경험인가? 좋은 경험은 낱낱의 경험을 산술적으로 합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의 의식세계 내부에는 나무 한 그루와도 같은 체계가 있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
이것이 나무 한 그루의 열매에 해당하는지, 혹은 잎, 줄기, 뿌리에 해당하는 지를 살펴
종횡으로 연결하고 배치하여 내면화시키는 상태, 이것이 좋은 경험이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시간에 관찰을 하더라도 교사의 의식세계 내부에 있는 나무 한 그루의
모양에 따라 관찰 방식이 다르고 쌓이는 경험이 다를 것이다. 어떤 상태로 경험이 쌓이느냐에 따라
이를 현실 세계에 적용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모습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역시 기능적 관점, 도구적 관심이다. 좋은 경험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내 안에 들어오고, 또한 물이 흐르듯 내 안에서 밖으로 나간다. 그것이 교사 개개인이 서로
다르게 갖는 콘텐츠이다. 대화에서 콘텐츠가 중요한 이유이다.
-잠재능력 확인해 주기-
"교사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학생의 잘못된 점을 발견하고 이를 지적하여
개선하도록 보완하여 주는 것이다." 많은 교사들이 이러한 학생지도 관점을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이른바 처방(prescription)적 관점이다. 결핍사항을 드러내고 그에 알맞는 처방을 제시하면
학생의 행동이 개선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교육현장에서는 오래된 관행적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세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교사의 관찰이 정확할 것, 둘째는
학생 입장에서 이를 수용할 것, 셋째는 교사의 처방이 적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관찰이
미흡하거나 학생과의 갈등이 야기될 때 이 방법은 오히려 학생지도에 해를 가져온다.
최근 많은 심리학자들은 '긍정의 힘'에 무게를 둔다. 학생의 단점을 들추어 확인하기보다
학생이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을 발견하여 그것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과정에서 학생과의 거리를
좁히고 학생으로 하여금 긍정적 자아관을 갖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물론 학생이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을 발견하는 것은 교사의 안목에 달려있다. 따라서 교사들은 이러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잠재능력을 확인한다는 것은 전문성을 요하는 방법이다. 일방적인 '칭찬'과는
많이 다르고 목적없이 띄워주기는 더욱 아니다.
가령, 만화 그리기를 즐겨하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이 학생은 만화를 그리는 것이 너무 좋아서
아침자습 시간, 쉬는 시간, 때로는 수업 시간에도 만화를 그릴 때가 있었다. 보통의 경우 교사에게
왜 수업 시간에 만화를 그리는 것이 좋은 행동이 아닌지 야단을 맞거나 설교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만화를 그리고 싶은 욕망을 최대한 억제하고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아마도 이 학생은 "만화를 그리는 순간만큼은 즐겁고 행복한데 왜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지? 나의 행복에 대하여는 이해를 해주지 않는 분이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필자도 비슷한 예가 있었다. 필자의 경우 오히려 지훈(가명)이가 그린 만화를 발견했을 때
야단부터 치지 않고 "야, 지훈이 그림은 선이 뚜렷하고 힘이 있는 걸? 나중에 만화를 그리는
직업을 선택해도 되겠다..."라고 말해준 다음, "선생님도 만화에 대하여 관심이 많단다.
오늘 종례 끝나고 선생님하고 얘기좀 할까?" 이렇게 대화를 청하였다.
교무실에서 지훈이와 대화를 하면서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켄트지를 한 묶음 주었다.
수업 시간에 쓰려고 대형마트에서 싸게 사 놓았던 종이이다. 지훈이가 너무 좋아한다.
"마음껏 그려 보거라. 좋은 작품 나오면 선생님에게도 알려주고... 그런데 지훈아, 좋은 그림은 먼저 구도가 잘 잡혀야 하고, 균형감이나 비례 같은 것이 잘 맞아야 한단다... 요즘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도형의 합동, 닮음 같은 것과 아주 관련이 깊지. 마찬가지로 국어시간, 사회시간의 여러 학습내용은 네가 스토리를 짜는데 많은 도움을 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수업시간이 네가 그리는 만화와 관련이 있지? 상식과 안목이 풍부한 만화가가 성공할 확률이 높단다."
지금은 수업시간에 만화를 그리지는 않는다. 가끔 자기가 그린 만화라며 나에게 가져와
설명도 한다. 얼마 전에는 선물이라며 우리반 학습 표찰을 멋지게 디자인하여 가져오기도 했다.
자기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일도 잦아졌다. 얼굴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지훈이가 정말 멋진
만화가가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대하여
선생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그 단순한 사실 때문에 요즘 지훈이는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학생에게 사과하기-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사 역시 불완전한 인격체이다. 따라서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할 수 있고, 잘못된 판단이나 오해로 학생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렇듯 본의 아니게
학생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경우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교육적일까?
깔끔하게 사과하는 것이 좋다. 물론 교사가 학생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권위가 서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교사도 성장 중에 있는 불완전한 인격체라는 점, 사과의 방식과 절차도 학습의 일환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사과를 했다고 해서 권위가 실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심어린 사과를
함으로써 학생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관계의 회복을 가져오는 이중의 효과가 있다.
더 나아가 학생은 교사의 사과로부터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과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배운다. 즉, 교사의 사과는 '잘못했을 때 사과할 줄 아는 학생'을 키운다.
사과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확인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은 절차는
학생의 마음이 상한 연유를 밝혀 치유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학생과의 소통이 어렵다면?-
학생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학생들이 쓰는 언어에 대하여 교사들이 과민반응을 하면 정말로 소통하기 어려워진다. 대개의 경우 학생들은 깊은 생각없이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부적절한 단어들을 골라 쓴다. 그리고 그것이 미칠 파장에 대하여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악의'가 없다는 뜻도 된다. 만약 교사가 학생들의 언어 한 마디 한 마디를 분석하려 들면 그는 매우 피곤하고 열받아서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내 방식으로 소통하려 하지 말고 상대방의 방식을 이해하시길.학생들은 교사와의 대화 중에 '짜증나!', '졸라 웃겨...', '헐~ ' 이런 말들을 자주 사용한다. 위의 말들을 심각하게 듣기보다 그저 문장에 삽입하는 여흥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교사의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이 말들에 심각하게 반응하면 학생의 입장에서는 '선생님은 매우 예민하시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학생과 갈등을 겪는 교사에게서 나타나는 많은 사례들을 보면 '학생으로부터 받은 자존심의 훼손' 때문에 분노하고, 학생은 그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여 더욱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본질은 사라지고 서로 간의 소통방식 때문에 갈등을 키운다. 표현에 관한 부분은 무시하고 의사표현의 본질에 집중해보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결 높아질 것이다.
-자부심-
자부심이란 스스로의 가치와 능력을 믿는 마음이다. Tony Humphreys(안기순역/다산초당)의 '선생님의 심리학'을 읽다보니 교컴지기가 진행하는 리더십 강좌의 문제의식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이 있어 소개한다.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자부심이 있는 교사와 함께 생활한 학생이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책을 보니 여러가지 참고할 만한 사항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교사 자부심의 증거를 열거한 항목이 있다. 일부를 발췌하여 보겠다.높은 자부심의 증거
• 자신과 타인을 인정한다.
• 생활에 활력이 있고, 도전적이고, 낙관적이다.
•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의사를 표시한다.
• 좌절에 대한 저항력이 있다.
• 자신만의 문제, 감정, 인식, 야심 등이 있다.
• 신체적으로 건강하다.
• 소수의 의미있는 타인과 정서적으로 친근하다.
• 감정적으로 성숙하다.
• 약점을 강점의 개발 기회로 생각한다.
• 삶의 모든 측면에 진정으로 관여한다.
• 자신을 신뢰하고 높이 평가한다.
• 순응하기를 거부한다.
• 필요한 경우 지지, 조언, 도움, 위로를 구한다.
낮은 자부심의 증거
• 매우 의존적이다.
• 쉽게 상처받는다.
• 비관적이고 운명론적이다.
• 의사소통이 자기 보호적이다.
• 변화에 저항한다.
• 깊은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느낀다.
• 외롭고 고립되어 있다.
• 자신을 위해 유쾌한 경험을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 거부당할까봐 두려워한다.
• 때로 자살충동을 느낀다.
•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한다.
• 경직되어 있고, 융통성이 없다.
• 신체적 건강을 돌보지 않는다.
• 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
우선, '자신과 타인을 인정하는 것'은 자부심의 으뜸 조건이라는 것에 동의한다.자부심의 스스로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라 하지만 자신에게만 초점을 두면 그것은 자부심이 아니라자만심이 된다. 여기서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주체인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체적인 건강을 돌본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자신을 귀하게 여겨야 남도 귀하게 여긴다는 말이 되겠다. 감정적으로 성숙하다는 말도 와 닿는다.교사들끼리의 갈등을 보면서 '감정을 컨트롤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요즘을 사는 교사들에게는 필수가 아닌가 생각한다.'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 하는 것'은 낮은 자부심의 증거로 예시되어 있다. 자부심이라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믿고 스스로를 존중한다는 말이니까 자신의 능력을 믿는다면 주변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믿는 힘이 부족하면 조급하게 타인의 반응에 귀 기울이려 하고 자신의 능력을 내어 보이려 할 것이다. 이것은 교사로의 '내공'과도 관련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교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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