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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따뜻함의 차이 (한상순 편)

길길어멈 2010. 5. 30. 14:35

 

(열린 아동문학 ‘이 달의 동시나무’) 담당: 배익천 님 2009. 11. 25. 수

- 한상순 편 -

 

 

따뜻함의 차이

이 상 교

 

 

 

 

 

1. 들어가며

그녀, 한상순이 나와 그처럼 지척지간인 경희대 병원을 일터로 지내고 있는 줄은 미리 알지 못했다. 알았다고 해도 별 뾰족한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누구라도 병원을 좋아할 리 없다. 나 또한 병원이라면 감옥가기보다 꺼려하는 터라서 병원 말만 들어도 지레 몸이 굳을 지경이었다. 한상순은 바로 그 병원이라는 데에 일터를 삼고 있었다.

한상순을 알기는 이미 꽤 되었으나 병원에 근무하는 이를 아는 것만으로도 혹여 병원에 자주 드나들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비슷한 것으로 그녀를 가까이 대하지 못했던 것 아닌지 모르겠다. ^^

한상순은 한상순대로 내가 연배도 훨씬 위인 선배인데다가 쉽게 내비쳐 보였을 내 잘난체에 기가 질려 지레 가까이 않기로 마음 먹었을른지도 모르겠다. .

또 하나, 나는 진즉부터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반쯤은 천사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온 터여서 가깝기 쉽지 않았다. 그렇듯 한상순은 반이 천사인 채 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말수가 적은 그녀와 이따금 마주쳐 오면서도 긴 이야기를 주고 받지는 않아온 터였다. 그러다 좀 더 가까워지게 된 것은 내 건강 종합 진단 건을 기화 삼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상순은 생각했던 대로 매우 친절하고도 자상하게 진료 거쳐야 할 여러 복잡한 과정들을 과감하게 생략하도록 도와주었다. 더욱 기뻤던 것은 약간 불안해하면서 받은 종합진단에서 나이에 맞게 살아 있을만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아니, 그전에 동시 쓰는 후배 둘과 함께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긴 했다. 그때 소설집 한권을 받아들었는데 바로 밑의 동생이 약사이면서 소설로 등단한 지 오래 되었다고 들었다.

“문학 가족이네!”

밑으로 동생이 셋인데 모두 문학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한 동생은 이미 등단하 바이며.

두 분 부모님께라든지, 아니면 주변의 누구에게서든 자극을 받은 것 아닌지 물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은 문학을 하지 않으면 안될만한 계기가 있곤 하니까 말이다. 몸에 신이 들려 마침내는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가 평범한 농부이시면서 손에서 읽을거리를 놓지 않으셨어요.”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이다. 형제들은 읽을거리를 손에서 놓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눈여기며 성장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자라났던 어린 시절, 이 다음 커서 작가가 될 것이다 하는 꿈을 꾸면서 습작에 온 힘을 기울였을 이는 몇이나 될 것인가. 글을 쓰고 읽는 기쁨을 스스로 깨달아 글짓기에 몰두하고 그러다 보면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도 탈 것이며, 그것이 당사자에게는 물론, 부모님께도 기쁨이 되는 일임을 깨달아 점점 더 몰두하게 되는 것 아닌지. 그리하여 중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문예반이라는 곳에 들게 될 것이며, 문예반 외의 다른 특별활동 부서는 생각지도 않게 되는, 그런 수순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듯이 말이다.

조금도 생각지 않은 일로 간호학을 전공하게 되면서도 모르면 몰라도 한상순은 문학에의 꿈을 접지 못했을 것이다. 문학이라는 것이 하루아침 마음먹기에 달려 되는 것은 아니므로.

한상순은 자유문학 동시 부문으로 등단, 동시를 쓰기에 이르른다. 문학의, 동시의 바다에 풍덩 빠진 한상순은 얼마나 기뻤을 것인가. 그로부터 한상순의 문학을 향한, 동시를 향한 열정은 누구도 막을 길이 없이 되고 말았을 터이다.

나는 요즘도 한상순의 병원에 이따금 들른다. ‘한상순의 병원’ 이라 이름은 그곳에 가기 전부터 이미 나는 병원을 찾는다는 생각보다 ‘한상순’ 을 먼저 떠올려서다. 딸아이가 입원해 있었을 때,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았을 때도 나는 그이 앞에서 눈시울을 붉힌 일도 꽤 자주 있었다.

나와 한상순이 공통으로 간직하고 있는 동시에의 사랑. 그것이 우리를 좀더 가깝도록 묶고 있음을 나는 안다. 나아가서 동시가 나와 한상순에게 있어 살아가야 하는 일의 곤곤함을 벗어나게 힘이고 있음을 안다.

 

2. 깊고도 고요한 성찰

 

문학이 갖고 있는 치유능력에 대해 더 말해 무엇 하리. 한상순이 병든 이들을 돌보는 일은 동시작품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직업으로 태해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소외된 자를 돌보는 일’ 은 그이 동시에 큰 몫으로 끼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런 성찰없이 그저 그렇게 끼어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미 한 마리가

개미 한 마리 끌고 갑니다

 

함께 일하던 친구 개미

잘록한 허리를 다친 모양입니다

 

아프다고, 아프다고

그 작은 발을 바르르 떱니다

 

“급해요,

빨리 가야 해요!”

끌고 가는 개미의 외침이 들립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병원까지는 아직도 멀었나 봅니다

 

이럴 때

애앵애앵~

 

개미 마을에도

앰뷸런스 한 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개미 마을에도 앰뷸런스를‘ 전문>

 

고통으로 작은 발을 바르르 떨고 있는 개미가 보인다. ‘급해요./ 빨리 가야 해요!/ 가 개미의 외침만으로 들리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땅에는 힘없는 개미와 마찬가지로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갈 길이 없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잘 것 없어 보이는 개미와 사람을 똑같이 살아있는 것으로 보고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것은 물론 길을 지나다 보게된 개미 한 마리에게도 보살핌의 눈길을 주고 있다. .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꼭 네 정거장

걸어도 좋을 거리를 꼭

마을버스를 탄다

 

운전대를 잡고 부릉부릉!

폼 잡아 보던

문방구 앞 전자오락기

 

깨진 보도블록 틈새로

꽃대를 밀어 올리는

노란 민들레

 

빈 터만 있으면 자릴 잡고

조르르 모여 있던 강아지풀

 

달그락 덜그럭

내 가방에서 나는 소리랑 같이 뛰던

창수네 삽살이

 

다아 심심하겠다

마을버스 생기고부터는 <‘마을버스 생기고부터는’ 전문>

 

 

마을버스가 생겨서 이제 걷지 않아도 되게 생겼다. 그렇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전처럼 걷지 않으므로 소외되는 것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문방구 앞 전자오락기, 노란 민들레, 강아지풀, 창수네 삽살이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편리하게 된 것의 고마움보다 멀어지다 못해 잊혀질지도 모를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 한상순의 눈은 그처럼 소외될지도 모를 것에 대한 아타까움이 더 크다. 두루 보살펴 챙겨주고 싶다.

 

 

광화문 사거리에

긴 칼 옆에 차고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

 

오늘,

장군님 목욕하신다

 

트럭에 물탱크까지 싣고 와

머리끝 투구에서

발끝 장화 코까지

말끔히 닦아 주는 아저씨들

 

밝아진 눈으로

북악산, 청계천 두루두루 살피시라고

두 눈에서

주름진 갑옷자락까지

묵은 때 싹싹

 

우리 장군님

목욕하신다 <‘장군님 목욕하시다’ 전문>

 

 

한상순은 먼지와 매연 등으로 지든 모습의 이순신 장군에게 자주 눈길을 주었을 터이다. 언젠가 시원하고도 말끔하게 목욕을 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드디어 오늘 날을 잡아 목욕을 한단다. /머리끝 투구에서/ 발끝 장화 코까지/ 물을 홈빡 뒤집어 쓰고 목욕을 하게 된 이순신 장군. 찌든 먼지와 때로 그동안 두루 살펴보시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밝아진 눈으로/북악산, 청계천 두루두루 살피시라고/두 눈에서/주름진 갑옷자락까지/묵은 때 싹싹// 닦아냈으니 말이다.

시인 한상순은 불편하고 미흡한 것, 마땅치 못한 것을 유난히 견디지 못한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바로잡으려 들지는 않는다.

 

 

너, 용태 동생이구나?

형이 입던 하늘색 티셔츠

물려 입었을 뿐인데

 

너, 용태 동생이지?

축구 골대 앞에서

왼발 슈팅 한 번

멋지게 날렸을 뿐인데

 

너, 용태 동생 맞지? 맞지?

운동회 날 달리기 경주에서

기분 좋게 일등 먹었을 때에도

 

내 이름은 묻지 않고

‘김용수’라는 엄마, 아빠가 지어 준

내 이름 놔두고

모두들 용태 동생, 용태 동생 <‘내 이름은 용태 동생’ 전문>

 

 

 

나는 나이고 싶지만 뜻과 같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다. 내 이름은 김용수인데 모두들 ‘용태 동생’ 이라 부른다. 형인 용태와 모습이 닮은 것 뿐 아니라 소질까지 닮아 축구든 달리기든 다 잘한다. 원래 내 이름인 김용수라 불러주지 않는 일이 불만인 동시에 조금은 기쁨이기도 하다. 만일 형의 나쁜 점만을 닮았다면 속이 상할 터이나 그런 것이 아니다.

위의 시에서 ‘/엄마, 아빠가 지어 준/’ 은 빼 놓아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나 보건데 가족간의 긴밀함을 보이고 싶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내가 용태 형의 동생이듯 엄마 아빠의 아들이라는 사고의 확장인 셈이다.

내가 가족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한몫 끼어있음을 보이고 싶은 시는 다음의 시에서도 보인다.

 

 

 

 

아빠가 사 오셨다

바퀴에 빨간 테를 두른

빛살에 반짝이는 내 자전거

 

-야! 멋지다

-야! 잘 달리겠다

 

형아, 엄마,

할머니까지 모두 나와

반겨 주었다

 

지금까지 함께 타던

형아 자전거 옆에

나란히 세웠다

 

내일부턴 나랑

학교에도 함께 가자

 

너도 이제부턴

5학년이다 <‘새 자전거’ 전문>

 

 

 

 

내가 가족의 한 사람인 것은 물론, 게다가 나만의 것인 물건까지 갖게 되었다. 그것도 다른 것이 아닌 형과 함게 타는 것이 아닌 나 만의 새 자전거가 생긴 것이다. 기쁜 것은 나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함께 타던/ 형아 자전거 옆에 /나란히 세웠다.// ’ 내 소유인 자전거마져 형의 자전거와 동등해진 것이다. 내가 5학년인 것처럼 자전거도 5학년이 되었다.

한상순은 어느 누구도 억울하지 않고 다함께 기쁘도록 배려하고 있다. 나와 자전거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밤이 되면

강물 속에도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지

 

온종일 비어 있던 아파트도

물 속으로 내려와

한 집, 두 집

불을 밝히지

 

심심하던 송사리 떼

가로등 아래 왁자그르

숨바꼭질 신이 나고

 

밤잠 안 오는

물새 몇 마리

초인종 눌러 대며

아이들 불러 낼 궁리를 하지

 

딩동딩동

초인종 소리에

나만 한 아이

“누구니?” 하고 달캉

현관문을 열어 줄 것 같은

강물 속 아파트 동네 <‘한강물 속 그림자 동네’ 전문>

 

 

 

밤이 되면 강은, 강물 속은 다른 세상으로 바뀌고 만다. 어쩌면 낮보다 더 신이 날지 모른다. 강기슭 아파트가 거꾸로 비쳐들고, 비쳐든 아파트의 창에 불이 하나 둘씩 켜지면 송사리 떼는 송사리 떼대로 신이 나며 밤 강물을 거닐던 물새들은 물새들 대로 기분이 새롭다. 밤 강물이 낮과 달리 생동감 있게 살아나는 느낌이다.

'/심심하던 송사리 떼/가로등 아래 왁자그르/숨바꼭질 신이 나고// ‘ 시인은 아마도 바지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강기슭 얕은 물 속을 송사리 떼와 함께 배회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한낮의 소음이 끊겨 조용할 것으로 짐작이 되는 강물 속의 또 다른 용솟음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시인의 눈이 일반인의 눈과 다름, 같은 풍경을 눈 앞에 두고 감흥없이 바라볼 때와 마음을 다 두어 눈여겨 볼 경우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는지 알 수가 있다.

 

 

 

 

3. 벗어나기

 

한상순, 그이의 시는 요즘 달라지는 느낌이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시로 드러내놓는 중이다. 그것은 대단히 바람직스럽게 느껴지는 것으로 소재를 어디서 어떻게 구하든 그것의 표현 방법에 따라 시는 살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시 쓰기에 있어 눈으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표현해 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어디 또 있으랴.

한 가지, 한상순이 쓰고 있는 시의 문제를 짚어보기로 한다면 짐짓 수다스럽고자 애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나도 겪는 일로 무엇을 소재로 삼아서든 ‘이쯤의 표현만으로는 어쩐지 재미가 적은 듯하여’ 넣지 않아도 좋을 말마디를 더 우겨다 집어넣는 일이다. 그리하여 좀더 깔끔하게 다듬어졌을 시가 덜 다듬어진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시간이 더 흐르고 난 뒤 스스로 깨닫게 되어 시로서의 긴축미를 담아가게 될 것이다.

동시평론가가 아니면서 정해진 매수를 채울 겸 구구하게 말이 길어졌다. 이런 글을 쓸 때마다 저어되는 것은 혹여 마구 휘둘러 쓴 내 글에 당사자는 물론, 그밖에 글을 읽을 이마져도 불편해지면 어쩌나 싶은 염려다. 뭐, 어쨌든 시간을 들여 써 내린 글이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글이 아니기만 바랄 뿐이다.

한상순 그이가 마침내는 성숙한 동시인으로, 한그루의 당당 동시나무로 설 것이라는 기대를 마지 않는다.

그이의 시를 새롭게 읽는 동안 ‘따뜻함’에도 차이가 있음을 깨닫는다.

끝으로 한 가지, 한상순이 일터인 병원에서 보고 듣고 또는 느끼는 일을 시의 소재로 삼든 또는 그밖의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삼든 바라는 것은 마침내는‘벗어나기’에서 조차 벗어나 한껏 자유롭기를 소망한다. (*)

 

 

 

 

 

 

 

 

출처 : 한국동시문학회공식카페
글쓴이 : 겸비 이상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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