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밭(펌)/시의늪

[스크랩] 동시 창작법.2/신현득

길길어멈 2010. 5. 24. 18:13

동시 창작법 ②

동시(童詩) 산책(散策)

신 현 득
 

    학교 종이 땡땡 친다.
    어서 가 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이 <학교종> 노래의 「땡땡 친다」는 어법에 맞지 않다 해서 지금은 「땡땡땡」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첫 행에서 「땡땡」을 빼버리면 「학교 종이 친다」가 된다. 「종이 친다」는 「글씨가 쓴다」「옷이 입는다」「공이 친다」와 마찬가지로 문법적인 모순이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동시가 얼마든지 있다. 이 동요를 지은이도 처음 그 문장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글이 되었고 그것이 작곡되어 상당히 오랜 동안 어린이들 입으로 불려졌던 것이다.
  시처럼 어법을 따지는 문장은 없을 것이다. 동시는 더욱이 그렇게 해야 되고 그렇게 해야 어린이들을 위한 시가 되는 것이다.

    저기 가는
    저 영감
    꼬부랑 영감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처음 지어졌을 때의 <자전거>라는 이 동요는 교육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런 노래를 권한다면 도의 교육이 어떻게 되겠는가? 어른을, 특히 나이 많은 할아버지를 놀리는 것이 되고 만다.
  도의를 범하는 것이 아동문학일 수는 없다. 아동문학은 교육과 문학의 중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교육이 되지 않는 문학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따위의 글은 동요뿐만 아니라 어느 노래의 가사로도 좋은 것이 아니다.
  섹스를 동원할 수 없는 게 아동문학이라고 한다. 섹스가 꼭 비도덕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은 아직 섹스가 그들의 생활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따라서 아동문학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
  이런 도덕 문제나 섹스 문제를 생각지 않고 씌어진 아동문학 작품이 눈에 띄기도 하는 것이다.

    땅 속엔
    땅 속엔
    누가 있나 봐.

    손가락으로
    쏘옥 올려미나 봐

    쏘옥
    모란꽃 새싹이 나온다.

  이 아동시는 조금 전까지도 교과서에 실려 전국 어린이들의 본보기 글이 되어 주었다. 땅속에다 손가락을 두고 봄날 돋아나는 새싹의 광경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 시에는 모순이 있다. 모란싹은 땅 속에서 솟은 것이 아니라 모란의 가지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모순을 처음 발견해낸 사람은 시인 박목월씨라고 한다.
  이와 같이 아무리 착상을 잘 잡은 글이라해도 내용에 모순을 가지고 있어서는 작품이 되지 않는다.
  이런 보기는 얼마든지 있다.

    병아리떼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병아리가 놀던 곳은 무논 가운데가 아니다. 그런데 미나리는 미나리논 같은 물이 고인 데서 싹을 틔운다. 물론 마른 땅에서 미나리가 돋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보편성이 없다. 보편성이 없는 경우는 작품에서 피하는 것이 좋다.
  언젠가 나는 백두산 천지에 대해서 재미나는 걸 생각햇다. 천지의 물이 그 넓은 호수에 하나 가득 괴자면 얼마나 깊은 땅밑에서부터 많은 물이 솟았겠느냐 하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백두산의 뿌리쯤 되는 깊이에서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퍽 재미가 있었다.
  이 물이 백두산에 고여 있다가 압록강 두만강이 돼 흐르는 것이다. 이 때 호수의 물은 절반씩 나뉘어서 서로 이야기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얘, 너는 압록강물 되어라. 나는 두만강물 될께.」
  「그래 그래 지금부터 작별이야. 그렇지만 바다에서 만나게 될걸.」
  나는 이렇게 천지의 물이 압록강 두만강의 물줄기로 나뉘어 흐르는 장면을 생각했다.
  나는 이런 착상이 좋은 시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며칠 밤이나 시를 낳느라 끙끙거렸다.

    하나의 물줄기로
    같이 솟아서
    너는 압록강
    나는 두만강

    나뉘어져 흐르는데
    손 흔들며 헤어지지만
    너른 바다에서는
    다시 하나가 돼
    만날 걸.

  나는 며칠만에 이런 낱귀절 몇을 생각하고 더 다듬어 보면 대작이 되리라는 기대를 해봤다.
  그렇지만 확인을 해야 한다. 정말 압록강 두만강이 천지에서 흐르는가? 그 때 어느 교과서에 그렇게 배운 듯하고 학교 선생님도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확인을 할 필요는 있다.
  그런데 온갖 서적을 다 뒤진 결과 천지에서 흐르는 것은 엉뚱하게도 송화강(
松花江) 하나뿐이었다. 백두산에 오른 등정기(登頂記)를 읽어봐도 역시 그러했다.
  실망은 컸지만 다행이었다. 이것을 잘못 알고 이 작품을 발표했더라면 나중에 얼마나 웃음거리가 됐을까?
  결국 이렇게 해서 이 엉터리 작품은 폐기가 되고 말았다.

    비가 돼 내리면서
    내려다봤네.

    하나의 반도가 젖고 있네.
    산맥이 젖고 있네.
    총부리가 젖네.

    나의 한 끝은 벌써
    강을 이루며 긴 구비를 돌아
    바다로 흐르고 있네.
    저쪽 영상강으로도 흐르고 있네.

    도롱이를 쓴
    농부들이 논둑을 걷고 있네.

    틀림없는 같은 나라 사람이 걷고 있네.
    시들었던 땅이 푸르게 일어서네.

    백두산 천지가, 작은 그릇이
    나를 받아 모으네.
    송화강으로 나를 쏟아 보내고 있네.

    저쪽에서도 한라산이
    백록담이란
    그릇을 들고
    방울방울 나를 받아 모으네.

  이 시는 동시라는 이름으로 지난 여름 『소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제목은 <비가 돼 내리면서>였다.
  이 시의 내용에서 <나>는 구름이다. 구름인 <나>가 비가 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표현으로 봐서는 구름이 백두산 한라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이에 떠 있다. 이것은 인공위성 정도의 높이에 있어야 한다. 도대체 그런 소나기 구름이 있을 수 있는가? 사실은 한 고장을 내려다볼 만한 높이의 구름도 잘 있을 것 같지 않다.
  시는 허풍이며 거짓말일 수 있다. 그러나 이치에 맞는 거짓말이어야 한다. 그런 점으로 봐서 이 시는 단단히 얻어맞아야 하고 그 책임은 지은이인 필자가 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모순을 알면서도 이 엉터리 글을 발표한 것은 이 시를 낳기까지의 수고와 이 시에 담긴 나의 염원 같은 것이 아까워서였던 것이다.

(1978. 10. 『아동문학평론』 제10호)

 



흐르는 곡/시월 어느 멋진 날에
출처 : 한국동시문학회공식카페
글쓴이 : 물방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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