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첫 번째 편지)
작은 아들 계속 집에서 보다가 없으니 적적하겠습니다.
입대 날 아부지랑 형이랑, 데려다주신 아버지 친구 분이랑 작별을 하고나서부터 취침 시까지 참 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바깥생각, 부모님생각, 형 생각, 친구생각 하면 할수록 심란해져서 억지로 라도 앞에 일만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훈련소 안에서도 소소한 재미를 찾고 힘든 하루에도 그 소소한 재미로 위안을 얻습니다. 최근 가 입소 기간이 끝나면서 소대가 바뀌었는데 그사이 생활관 동기들과 정이 많이 들었던지 많이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바뀐 소대도 차차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이번 소대는 모두 다 한 살 씩 동생들이예요. 벌써 같은 생활관 동기들은 모두 친해졌습니다. 매일 틈틈이 일기도 쓰는데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됐습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쓰기 싫어서 손바닥 맞으며 안 써 갔는데… 역시 훈련소는 훈련 빼고 다 재밌습니다. 오죽하면 옷 정리, 관물대 정리가 재밌을 정도로. 그래도 제 생각엔 제대하고 나면 안할 것 같습니다. 정말 여기는 옷 개는 법, 물건 정리하는 법, 먹는 법, 걷는 법, 뛰는 법, 심지어 이불 개고 펴는 것까지 하나하나 다 알려줍니다. 그래서 딱 하나 편한 건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 좋습니다. 슬슬 생활도 익숙해지고 6시 기상에 아직 제대로 된 훈련은 시작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6주(4주하고 수요일까지)열심히 배우고 빨리 해군 정복 입고 수료식날 보고 싶습니다. 까맣게 탄 얼굴과 흰색 정복이 꽤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날 잠깐이겠지만 맛있는 것 먹으러가요. 근데 훈련소 짬밥이 진짜 맛있긴 합니다. 하여튼 군대에서도 나름 소소한 재미를 아들 나름대로 찾아가면서 생활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적적해도 좀 참으면서 수료식 날 만나요~~
-막내아들 효길 올림-
P.S 1. 아들 친구들한테 편지 받고 싶어요!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진희로 111사서함 211-2-2 해군교육사령부 제1군사교육단 신병교육대대 2중대 5소대 66번 양효길 훈련병’ 주소를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게시해
주세요.(ID: didgyrlf12@naver.com / pass : gil150555 )
2. 건강하세요! 특히 아버지 밥 좀 잘 드시고 맨날 엄마만 혼납니다! 어무이는 운동, 경락 열심히 하시고!
3. 수료식 날 악기랑 핸드폰 꼭 좀 가져와 주세요!
2016.6.3. 첫 편지 받음
부모님께(두 번째 편지)
두 번째로 편지 적습니다. 고되다고 생각하면 고되긴 하지만 사람이 한 달 만에 바뀌긴 쉽지 않기에 그 과정이라 생각하면 지금이 그리 힘들거나 서럽진 않습니다.
다만 이전의 자유분방한 생활과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생각 안하려고는 하는데 할 때마다 울적해집니다. 차라리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할 때가 편합니다. 벌써부터 많이 보고 싶습니다. 잔소리도 많이 생각나고 아빠가 계속 전화 하는 것도 생각나고, 형하고 장난치던 것도 많이 생각납니다. 아직 2주밖에 안됐는데 시간은 왜 그렇게 안 가는지…
하루가 일 년 같기도 합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진짜 실제로 겪고 있어요. 3주 뒤 아들이 급 늙어있어도 놀라지 마세요. 아! 그래도 역시 집을 나오니 살은 진짜 많이 빠집니다. 오늘 아침에 탄띠를 두르는데 처음 받았을 때는 조금 작던 탄띠가 헐거워져서 한 칸을 줄였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그래서 그런지 빡빡 머리도 이젠 많이 어울립니다. 세 번 정도 구보를 뛰었는데 한 번도 낙오된 적도 없어요. 이젠 저녁 전추구보가 상쾌할 정도로 체력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틈틈이 수첩에 생각날 때마다 곡 구상도 적어놔요.
이렇게 아들 아직까지 군 생활 잘 하고 있습니다. 혹시 걱정하거나 그러지 않으시죠?
수료식날 저녁시간까지 외출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때 여유롭게 진해도 천천히 둘러봐요. 저번에 빨리 걷으러 옥상에 올라갔는데 경치가 진짜 좋았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몸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시원한 바닷바람 쐬면서 열심히 FM으로 빡세게 훈련 받고 있을게요. 사랑합니다.
-막내아들 효길-
P.S 1. 몰랐는데 인터넷 댓글이랑 편지도 오네요. 사진이나 이런 것도 볼 수 있다합니다.
부대에서 연락 갑니까? 연락 왔으면 보고 응원해주세요!
2. 부모님 의견서, 면회참가 희망서 꼭 넣어주세요!
3. 핸드폰은 전에 들고 갔던 까만색 크로스백이 있어요. 수료 때 가져 오세요.
2016.6.14.도착(부대에서 온 안내장과 같이 들어있는 편지)
부모님께(세 번째 편지)
유격훈련 하러 야전교육대에 왔습니다.
첫날 별다른 훈련 안했는데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특히 구보 후 얼차려 받는데 죽는 줄 알았습니다. 각오는 하고 왔지만 생각보다 강도가 쎄더라구요. 앞으로 월요일부터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는데 솔직히 훈련보다 얼차려가 무섭습니다. 아무리 단체생활이라지만 내가 잘하는데도 혼나는 건 서럽습니다. 그래도 경례를 잘해서 상점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하…
하여튼 유격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아버지 손 편지와 어머니 인터넷 편지 받았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 굳세게 하시고 위로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딱 정말 힘들어서 견디기 힘들 때, 이렇게 응답해 주셨나봅니다. 교회 열심히 다닌 보람이 있어요.
앞으로 힘들 때마다 읽고 또 읽을 것 같아요. 사실 훈련은 이번 주 유격만 끝나면 힘든 훈련은 없어요.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고 기도 많이 해주세요.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주말이라 그런지 편지 쓸 시간을 많이 주시네요. 헌혈한다고 얼차려도 빠지고 그나마 좀 주말 같아요.
앞으로 뛰어다닐 일이 많으니 체력을 비축해 놔야겠어요. 잘 이겨내겠습니다.
-막내아들 효길-
P.S 할머니 좀 괜찮으세요? 다음 달 말쯤에 잘하면 첫 휴가 나갈 것 같아요. 그때 뵈러 갈게
요. 수료만 하면 휴가 많이 나가니까 그 때까지 만이라도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P.S 편지 세 통째입니다. 잘 가고 있나요? 자주자주 써 주세요.~ 힘이 정말 많이 됩니다.
2016.6.14.(화) 도착
부모님께(네 번째 편지)
어무이 아부지! 네 통째 편지입니다.
꼬박꼬박 엄마의 인터넷 편지 받고 있어요! 취침시간에 시계 불빛에 비춰가며 몰래몰래 읽습니다.(낮엔 읽을 여유가 없어요.ㅠㅠ)
편지를 한 번에 걷어서 내서 답장이 늦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별 일없이 건강하게 있습니다.
차라리 감기라도 걸려서 힘든 훈련은 열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쉽게도 너무 건강합니다. 편지에서 왜 수영하는 사진에서 제가 없나 하시는데…아들 유격 갔어요. 1중대와 2중대 나눠서 훈련하는데 제 중대는 유격을 먼저하고 다음 주에 수영합니다. 곧 행군하는 사진, 사격하는 사진 올라올 거예요. 신병교육대대가 힘들 줄 알았는데 여기 야전교육대는 한단계 높습니다. 총 들고 뛰어다니는데 근육이 터질 것 같아요. 오늘까지 사격과 제식을 했습니다. 이제 유격, 개인침투, 화생방, 25km 행군이 남았습니다. 사실 다른 것보다 사격이 가장 긴장됐어요. 덜 힘든 만큼 위험하니까... 그래도 방금 무사히 마치고 편지 쓸 시간이 있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제 훈련 하나를 끝내서 마음이 후련해집니다.
편지를 쓰다 보니 훈련하나를 더 끝냈습니다. 하루에 편지 쓸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적을 때마다 상황이 바뀌네요. 벌써 야전교육대 온지도 6일째예요. 오늘까지 사격, 제식, 각개전투를 마쳤습니다. 이제 맨몸으로 뛰어다닐 일만 남았습니다. 여기도 이만큼 지내다보니 적응이 되네요. 불침번도 거뜬히 해냅니다. 다만 몸이 좀 피곤하긴 하지만…사실 하루도 안 빠지고 몸이 안 힘든 날이 없었어요.
휴가 나가면 빨리 침대에 눕고 싶습니다. 집이 진해랑 멀어서 아쉽네요. 수료식 날 사실 배부르게 먹고 맘 놓고 푹~자고 싶습니다. 외출 시간이 아쉽네요. 잘해야 9시까지 복귀더군요.ㅠ
점점 향수병이 심해집니다. 요즘, 오죽하면 재수할 때가 그립습니다. 오전에 한적한 문화공원을 지나던 것, 같이 재수하던 형이랑 라면 끓여 먹었던 것, 그땐 힘들고 지긋지긋 했는데…엄청 미화되어 생각나네요. 지금도 지나면 그립고 그럴까요? 지금 당장은 제 인생에서 최악의 한 달입니다. 입시 한 달 전이랑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이렇게 고립되고 답답하긴 처음입니다. 그래도 지나면 친구들 술안주 거리겠지요? 할 얘깃거리가 진짜 많아지긴 했습니다. 수료 날 만나면 이러쿵저러쿵 하소연 할지도 몰라요. 앞으로 21일 남았습니다. 모레면 딱! 반 정도 한 겁니다. 하루하루 날짜를 지워 갈 때마다 조금만 더! 힘내자! 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일기 쓴 것을 보면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느낍니다. 이제야 좀 적응됐으니 다음 주 부터는 시간이 금방 가겠죠? 다시 볼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건강하세요.
-막내아들 효길-
P.S 다행히 여기 날씨는 구름이 많이 낀 날씨입니다. 훈련 내내 시원합니다!
2016.6.16.(목) 도착
부모님께(다섯 번째 편지)--6월16일쯤 쓴 편지로 추정됨
다섯 번째인지 여섯 번째인지 헷갈리네요
행군이 끝나고 수영주가 시작 됐습니다. 예상대로 행군, 진짜 힘들었어요. 산악 행군 18km에 사령부 행군5km 정도… 그냥 하루 종일 걸었습니다. 취침 때가 되니 다리가 안 굽혀졌어요. 그래도 홈페이지에 시루봉 정상에서 찍은 사진하나 올라갔을 거예요. 하여튼 그 행군이 끝난 지 벌써 3일째네요. 이틀 뒷면 이제 수료식까지 카운트다운을 할 만큼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그 시간동안 제가 많이 바뀌었을지는 모르겠네요. 요즘 들어 생각이 많아지긴 했습니다.
제일 큰 건 역시 할머니 건강, 부모님 생각이지요. 떨어져보니 당연한 줄 알았던 사람들이 정말 소중하고 특히 할머니는 혹시라도 영영 보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훈련이 힘들 때 마다 생각해요. 할머니는 이것 보다 더 힘드실 텐데… 그렇게 간신히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버텨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정말 참기 힘들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보내주신 편지에 다시 힘을 얻습니다. 이제 이렇게 13일 버티면 되네요. 이번 주엔 수영훈련을 하는데 수영장 시설이 송도 LNG급으로 좋아요! 아부지랑 작년에 수영하러 다녔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근데 수영실력이 늘진 않아요. 말 그대로 생존훈련이어서 이함 훈련, 수중 행군, 등등 구명의를 입고 수영합니다. 고로 영법은 따로 안 알려주네요. 이함 훈련은 진짜 무서웠어요. 진짜 사나이에서도 한번 나왔던 것 같은데…비상시 배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인데 높은 다이빙대에서 호각 소리에 맞춰 뛰어 내렸습니다. 올라갔을 때 너무 무서워서 저도 모르게 흐어~ 소리가 났어요. 조교가 밀길래 툭 떨어졌습니다. 하여튼 이번 주는 수영장에서 훈련하고 행진간 제식훈련 하고….
수영하고 나면 갈비탕이 생각나네요. 수료날 갈비탕이나 먹으러 가요! 딱 13일만 참을게요.
-막내아들 효길 -
2016.6.22.(수) 도착
부모님께(여섯 번째 편지)--6월19일쯤 쓴 편지로 추정됨
여섯 번째 편지 보냅니다. 입대한지도 어느덧 한 달 정도 지났습니다. 주말을 맞아 교회에 갔더니 목사님께서 농장으로 교회에 100번 오면 전역인데 4번째니 앞으로 96번만 더 오면 제대 한다고 하시네요. 그만큼 안갈 것 같은 시간이 흘러가긴 하나 봅니다.
오늘이면 딱 10일 뒷면 만날 수 있네요. 시간이 날 때마다 보내주신 편지와 그동안 썼던 일기들을 보고 또 봅니다. 일기를 읽다보면 훈련들과 울고 웃던 감정들이 북적북적 하네요. 그동안에 일기 쓰면서 글 솜씨도 많이 늘었나 봐요. 첨엔 한 두 줄 쓰는 것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한 페이지 빽빽이 적어도 모자랍니다. 그만큼 자신을 돌아보고 표현 하는데 능숙해졌단 것이겠지요. 좋은 습관으로 일기 쓰기는 꼭 꾸준히 가져가고 싶어졌습니다. 초등학교 숙제처럼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적는 게 더 좋네요. 편지를 쓰다 보니 이제 지금 보내는 편지가 마지막 편지랍니다. 항상 빠르게 카톡 보내고 전화하고 했는데…, 쓰다 보니 이런 아날로그 방식만의 매력이 있네요. 훈련소랑 가까운데 사는 애들은 금방금방 가는데 저는 되게 늦게 가나 봐요. 그래서 편지를 매주 거출하면 언제쯤 도착해서 보실까 조마조마하고 편지에 제 편지를 봤다는 내용이 오면 또 그렇게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 편지라니…실감이 나질 않네요. 그만큼 만날 날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이번 주는 그 생각에 한 주 내내 설렐 것 같습니다. 항상 자기 전에 수료 날을 생각하며 잘 만큼 기대합니다.
만나 뵈면 꼬옥 안아드리고 아들이 이렇게 커서 멋지게 해냈다고 하고 싶습니다,. 항상 막내 취급 애기 취급 받던 아들이 얼마나 남자다워졌는지 기대해 보세요. 저는 부모님 생각보다 제 생각보다 강합니다. 훈련 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항상 긍정적이진 못했지만 나름 행복하게 한 달 버텼습니다. 얼차려로 다져진 근육도 보여주고 싶네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항상 생각하고 사랑합니다.
-다 큰 아들 효길-
PS1: 이제 답장하지 마세요. 마지막 편지라 훈련소로 오는 편지는 못 받는답니다.
PS2: 우수 소대로 뽑혀서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단체사진 하나 나왔습니다. 찾아보세요.
PS3: 친구들이 군대 가서 쓰라고 보내준 것들 많은데 그것도 갖다 주세요. 갈색 작은 쇼핑백 입니다!
2016.6.30.(목)도착(29일 진해 수료식 다녀온 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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