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밭/산 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바보로 사는 것은

길길어멈 2012. 6. 11. 16:46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바보로 사는 것은

 

 

 

                                                                                                          다원 손성란

 

돈을 벌고 싶었다면 교사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높은 지위와 권력을 꿈꾸었다면 결코 교사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돈이나 권력보다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그 가능성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이 택하는 직업이 바로 교사이다. 단순히 직업이라고 단언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교사의 길, 즉 사도를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찾아내기 어렵지 않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겨자씨만한 꿈의 씨앗을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현실 속의 열매로 실체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좀 더 적극적인 안내자로 개입하고 싶어 하는 실험정신 강한 과학자를 닮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우주의 생성과 질서와 변화의 역사를 꿈의 열매들에게 조목조목 보여주고 싶어 밤낮으로 사색하는 철학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의 에너지는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피는 꿈의 성장과정에서 한껏 충전되고, 꽃이 진 자리에 매달린 크고 작은 열매들의 합창이 든든한 재산이고 권력이라고 믿는 무리들이다.

 

다시 말해서 교사란 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낮엔 현실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밤에만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는 비현실적 존재로 비춰지거나 영양가 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답답하고 미련한 존재들로 인식되기가 쉽다. 특히 오랜 시간 공들여 온 꿈의 씨앗이 아예 움트지도 못하거나, 열매 없는 꽃으로 그 성장을 마감하는 불운을 만나면, 그동안의 정성과 노력은 한 순간의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뒤이어 홀로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외로운 투사가 되어 승리할 수도 없는 싸움을 멈출 수조차 없는 숙명을 품은 사람들이다.

 

 

자기주장은 선명하나 자신의 꿈은 희미한 아이들은 교실을 여관으로 만들어 버리고, 버튼만 누르면 해결되는 멀티 디지털 시대의 즉각적인 반응에 반사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교사는 그저 고집불통의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에 불과하여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기 일 수니 ‘교실붕괴’도 모자라 ‘학교붕괴’라는 무시무시한 신조어들이 범람해도 적당한 변명을 하기 어려운 판국이다. 교사는 교사대로 꿈을 먹고 배설한 것이 달콤한 꿈이 아닌 까맣게 타버린 희망의 찌꺼기로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애교스런 엄살에서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의 업을 치루는 자’라는 치명적인 죄에 대한 업보에 눌려 숨조차 크게 쉴 수 없는 누명을 쓰고 하루하루 속죄의 삶을 살아가는 자조어린 한탄으로 이어질 만큼 여전히 교사가 가는 길은 고단하고 험난하다. 더욱이 허리띠를 졸라맨 학부모의 교육열과 밤을 새워 공부한 학생들의 노력으로 이만큼 발전한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턴가 발전의 원동력의 한 축이 교사였다는 것이 부정되고 소외되면서, 스스로의 자긍심으로 버티어 오던 교사로서의 정체성마저 끝없이 추락하는 겹겹의 통증 속에 갇혀버린 실정이다.

 

하지만 뭐 어떠랴, 서로를 사랑으로 선택하여 결혼한 부부들도 치고 박고 싸우다 급기야는 라면 끓여먹듯 이혼을 하는 세상에서, 일면식도 없고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던 교사와 학생이 무엇 때문인지, 누구의 조화인지도 모른 채 만나서 스승과 제자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 사랑과 믿음의 포옹이 만들어내는 뭉클한 감동과 짜릿한 전율은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긴 시간 동안 가슴 저린 아름다움으로 맺혀 있어 교실이라는 수렁으로 오히려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눈 뜬 장님이 되고 마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긴 세월에 물기 빼앗긴 주름투성이의 서걱거리는 모습에도 한걸음에 달려와 덥석 안기는 팔딱이는 생명과 눈높이를 같이 하며 싸우고 놀 수 있는 곳, 별보다 반짝이는 꼬마들의 눈빛에 혹시나 부족한 지혜가 들통 날까 두려움에 떠는 새내기 선생님의 콩알 가슴에도 아랑곳없이 연신 선생님, 선생님을 부르며 세상의 온갖 궁금증을 물어오는 절대적인 신뢰의 추종자들이 쿵쿵쿵 먼지를 날리며 뛰어다니는 곳, 선생님을 닮고 싶어서, 선생님의 칭찬 속에 담긴 사랑 한 숟가락을 삼키고 싶어서 해바라기처럼 온몸의 척수를 선생님을 향하여 뻗치고 있는 작은 생명들의 믿음이 날마다 춤을 추는 곳이 바로 교실인 것을.

 

틈나는 대로 수업을 한다는 농담이 나올 만큼 업무가 주가 되어버린 현장이지만, 쏟고 또 쏟아도 더 쏟아놓으라고 호시탐탐 육체와 영혼을 탐하는 욕심꾸러기들이 오감(五感)을 활짝 열고 도전해오는 곳이지만, 진심으로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며 백년 후를 내다보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다독여주는 이 적은 인심 사나운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마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망설임 없이 사도(師徒)의 늪으로 뛰어들며 새 희망을 꿈꾸는 행복한 바보가 오늘도 두 눈을 부릅뜨고 쉼 없이 꿈을 꾸는 까닭이다. 바보로 사는 것이 기꺼이 행복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