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너 지금 어디로 가니 /황경신
사랑아 너 지금 어디로 가니
아무런 혼란 없이 살아왔다면 거짓말이겠지
사소한 불행은 늘 내 마음에 찾아들었고
때로 혼자 남겨진 것처럼 울기도 했지만
그렇다 해도 그건 장난 같은 거였어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러했지
나는 포장된 선물처럼 즐거웠고
모두들 나를 기대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어
그리고 너를 만났지, 나는 긴 밤 내내
너의 그림자와 싸웠어, 그러나 내 마음
한없이 어두워지고 나는 혼란 속에 내동댕이쳐졌지
어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지
아무런 위험도 없던 폭탄에 시한장치를 하듯
시간 내에 해체하지 못하면 함께 폭발할 것처럼
그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지, 구겨진 자존심과
더 이상 내 것 같지 않던 나의 모습들
한낱 모래로 흩어져 바람에 날리지도 못할
캄캄한 날들이 흐르고, 마침내 그것은 폭발해버렸지
그러나 그건 그저 또 하나의 문을 통과한 것일 뿐
사랑아 너 이제 어디로 가니
희미한 옛사랑 그림자만 남기고, 너는 지금 어디로 가니
PAPER - 1999.03 | + PAPER 황경신